솔직히 말하자면, ruby나 python, nodejs를 포함해 package manager를 이용하는 쪽이라면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을 java에서는 느낀다.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의존성이 있는 프로그램을 upgrade하면 뭔가가 잘못 되었을 때 걸리는 시간이 그래도 몇 분 정도인 것이 보통인데, java의 경우는 몇 시간에서 몇 일을 소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에러를 내는 이유가 업그레이드 된 프로그램의 설정 때문인지, 주변 프로그램의 설정을 바꿔야 하는지, eclipse가 문제인지, eclipse의 설정이 문제인지, 캐쉬 때문인지...
물론 끈질기게 버그를 따라가고 stack overflow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답이 보이게 마련이지만,
프로젝트와 관련없는 일을 하느라 버린 시간이 어마어마 하다.
java는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느리고, 의존성 문제가 많고, debug가 힘든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eclipse가 좋지 않아서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library를 제공하는 쪽의 문제라고도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java진영의 leader programmer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java는 익숙해 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뭔가를 변경해 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너무 많이 필요하다.
결국 이런 이유로 그 동안 java에 익숙해 지면서 뭔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점점 두려워 졌다. 뭔가 update된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려면 엄청난 비용을 치뤄야 할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에 java로 작업을 하게 되면서 느낀 질문에 답을 알게 되었다.
"왜 새로운, 더 좋은 기능들을 사용해선 안 되나?"
그때는 java가 무언가를 update했을 때, 맞지 않는 수많은 주변 package로 인해서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 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반면에 다른 언어들은 새로운 기능들을 가져다 써도 그렇게 까지 많은 고통이 뒤따르지는 않는다. 심지어 python 2.x를 쓰다가 python 3.x로 migration을 한다고 해도, 조금은 힘들겠지만, "다시는 이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는 당연히 아니다.
어쨌건, 가능하면 빨리 java를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더 있다가는 점점 구시대의 프로그래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모든 변화를 거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2018년 1월 8일 월요일
백수의 쓸모.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일들을 대신하면, 사상 최악의 실업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장자가 생각이 났다.
"가만 놔둬도 일이 저절로 돌아가면, 알아서 일하게 두고 집에서 실컷 놀면 될 것 아닌가?"라고 말하지 않을까?
인간의 쓸모라는 것이 과연 적당한 노동을 하는 것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이 하게 내버려 두고 인간은 꿈꾸고 공상에 빠져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산업사회는 아무리 많은 생산을 해도 가난한 자를 굶어죽게 내버려 둔 전력이 있기에, 인공지능이 많은 인력을 대체한 사회에서도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냉혹하게 버려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한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생산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듯이, 실업자들이 냉대받는 문제 역시 사회적 합의나 생각의 전환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회적 합의의 몇 가지 실험은 유럽의 기본임금같은 방법이 있겠지만, 몇몇의 선진국에나 가능한 일일 테고, 생각의 전환은 역시 인간과 인공지능의 융합이 되지 않을까?
미래가 천천히 온 다면, 인간이 "로봇과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르지." 같은 차별적인 생각을 줄일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할 수 있도록 온다면 융합을 통한 상생의 방향을 천천히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는 인공지능의 속도는 인간의 적응력을 기다려 주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 만이 방법으로 남을 것이다.
"백수는 여유있게 멍때리는 것으로 여유를 찾게 해 주지."
"머리가 복잡할 때는 역시 백수를 만나서 휴식을 취하는 거야."
백수에게서 이런 쓸모를 찾는다거나, 아니면 굳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며 우주로,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거부하고, 백수끼리, 혹은 백수에게 적합한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함께 따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적당한 공간을 요구해서 '백수족마을'이나 '백수국'을 설립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뛰어나 지면, '만물의 영장'자리를 너나 가져 하면서 건네주고, 평화롭게 공존하면 되지 않겠는가?
...
물론,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면, 인간을 닮아 자기 종족이 아닌 인간을 포함한 모두를 싸그리 다 죽여 버릴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래도 설마 인간만큼 그러기야 하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그 전에 인간 스스로 지금까지와 같은 잔인함을 조금 반성하고, 공존을 도모하는 마음을 키운 후 인공지능을 좋은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측면에서 백수는 인공지능이 발전해 가는 현 시점에서 가장 훌륭한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백수는 전쟁을 하지도 않고, 남의 돈을 빼앗지도 않으며, 싸움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압박하지도 않고 있으니까.
음... 실업자와 백수의 의미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나 싶긴 하다.
다음 세대에는 실업자가 아닌 백수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2017년 3월 20일 월요일
지금밖에는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아쉽게도...
오늘은 지치고 피곤하고, 조금 쉬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다른 사람을 칭찬할 일이 생각이 나고, 그 동안 때를 놓쳐 아쉬웠던 타이밍들이 생각난다.
그래, 그 때 보고 있어서는 안되었는데, 바로 그 날 그걸 했어야 하는데.
아쉽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기억력이 좋지 않은 관계로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 뿐이다.
그 때는 그날의 나에게 바로 "오늘"이었고 "지금" 이었다.
장자를 읽고, 마음을 비우려고 해 봐도, 더 크게 보려고 해 봐도, 결국 그의 말도 무언가를 일부러 바꾸려 하지 말라는 것일 뿐이었다. 그저 지금밖에 할 수 있는 시간은 없고, 더 크거나 작은 것이 없다.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을 해야 한다.
말을 삼키고 생각을 더하면, 더 좋아 보이고 더 멀리 보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자신의 능력이 작다면 작은 것일 뿐이지, 그것이 안타까울 일은 아니다. 뱁새가 뱁새로 태어나 뱁새로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다만 하루라도 붕새를 보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까울 뿐이다.
자신이 바보라면 그것을 드러내어 빨리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고, 자신의 능력이 그래도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면, 그것이라도 빨리 개발해서 도움이 되어가는 것이 맞다. 두려움은 단지 자기 보호 본능일 뿐이다.
꿈을 꾸고 있다면 그것을 말해야 한다.
어차피 너에게 그것을 이룰 능력이 없다면 세상 어딘가 이루어줄 사람을 자연히 만날 수 있다. 소중하게 간직해 봐야 곪아 터질 뿐이다.
아쉬움에 관하여...
1000번을 살아도 아쉬움은 사라질 수 없다. 하지만 스펀지에 물이 가득 차듯이 비어 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주변이 자신을 가득 채워 줄 수는 있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오늘은 지치고 피곤하고, 조금 쉬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다른 사람을 칭찬할 일이 생각이 나고, 그 동안 때를 놓쳐 아쉬웠던 타이밍들이 생각난다.
그래, 그 때 보고 있어서는 안되었는데, 바로 그 날 그걸 했어야 하는데.
아쉽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기억력이 좋지 않은 관계로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 뿐이다.
그 때는 그날의 나에게 바로 "오늘"이었고 "지금" 이었다.
장자를 읽고, 마음을 비우려고 해 봐도, 더 크게 보려고 해 봐도, 결국 그의 말도 무언가를 일부러 바꾸려 하지 말라는 것일 뿐이었다. 그저 지금밖에 할 수 있는 시간은 없고, 더 크거나 작은 것이 없다.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을 해야 한다.
말을 삼키고 생각을 더하면, 더 좋아 보이고 더 멀리 보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자신의 능력이 작다면 작은 것일 뿐이지, 그것이 안타까울 일은 아니다. 뱁새가 뱁새로 태어나 뱁새로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다만 하루라도 붕새를 보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까울 뿐이다.
자신이 바보라면 그것을 드러내어 빨리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고, 자신의 능력이 그래도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면, 그것이라도 빨리 개발해서 도움이 되어가는 것이 맞다. 두려움은 단지 자기 보호 본능일 뿐이다.
꿈을 꾸고 있다면 그것을 말해야 한다.
어차피 너에게 그것을 이룰 능력이 없다면 세상 어딘가 이루어줄 사람을 자연히 만날 수 있다. 소중하게 간직해 봐야 곪아 터질 뿐이다.
아쉬움에 관하여...
1000번을 살아도 아쉬움은 사라질 수 없다. 하지만 스펀지에 물이 가득 차듯이 비어 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주변이 자신을 가득 채워 줄 수는 있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자.
2016년 1월 26일 화요일
표준편차가 말해 주는 것
표준편차는 나에게 2 가지를 상기시켜 준다.
세상은 어디를 봐도 다양한 것들이 존재 한다는 것과, 항상 중앙의 일반적인 다수가 존재 한다는 것.
그 분포의 다양한 값들은 수많은 물건들이, 생명들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로서 세상이 어떤 특정한 물건, 생명, 사람에 의해 정의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고, 어떤 식의 '정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다양성을 규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안된다기 보다는 불가능할 것이다. 표준오류조차 일반적인 표준편차를 따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일반적인 다수. 중앙 부근에 몰려있는 그 볼록한 부분은 세상 어디를 봐도 비슷하게 중앙으로 몰려있는 다수를 상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다수의 강력한 힘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기껏해야 기성복을 만들거나 표준을 잡아서 대량생산을 하는데 사용해 온 그 힘은, 사실 켜켜히 쌓인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는 힘이다. 비슷한 힘은 더할 수 있고, 대량의 힘을 더하면 정말로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이다. 그 힘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더 빨리 데려올 수가 있다.
사실 사회라는 시스템이 다양성을 짓밟을 수 있는 힘이 바로, 다수의 더해진 힘이기도 했다.
어쨌건, 다양성을 존중하고, 강력한 다수의 힘을 옳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그것이 표준편차가 말하는 세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은 어디를 봐도 다양한 것들이 존재 한다는 것과, 항상 중앙의 일반적인 다수가 존재 한다는 것.
그 분포의 다양한 값들은 수많은 물건들이, 생명들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로서 세상이 어떤 특정한 물건, 생명, 사람에 의해 정의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고, 어떤 식의 '정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다양성을 규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안된다기 보다는 불가능할 것이다. 표준오류조차 일반적인 표준편차를 따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일반적인 다수. 중앙 부근에 몰려있는 그 볼록한 부분은 세상 어디를 봐도 비슷하게 중앙으로 몰려있는 다수를 상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다수의 강력한 힘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기껏해야 기성복을 만들거나 표준을 잡아서 대량생산을 하는데 사용해 온 그 힘은, 사실 켜켜히 쌓인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는 힘이다. 비슷한 힘은 더할 수 있고, 대량의 힘을 더하면 정말로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이다. 그 힘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더 빨리 데려올 수가 있다.
사실 사회라는 시스템이 다양성을 짓밟을 수 있는 힘이 바로, 다수의 더해진 힘이기도 했다.
어쨌건, 다양성을 존중하고, 강력한 다수의 힘을 옳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그것이 표준편차가 말하는 세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고개를 들자.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어린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병충해의 영향일 것이다.
난 나보다 젊은 나이의 사람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을 낮추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경험상 어떤 비하의 생각이나 발언이 일을 더 쉽게 해 주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힘들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 낸 사람은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수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도 힘들 일을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며 성공한 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니까. 아니면, 그 일이 자신의 능력보다 한참 모자라는 사람도 해 낼 수 있는 일이거나.
익지 않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마 세상이 그 정도로 썩어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힘이 들면 잠시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봐도 좋다. 우울할 때에는 우울한 음악이 효과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당신이 누구든 간에, 자신의 능력을 하수구에 처박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쉽사리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익은 벼에 비유하는 사람만큼 거만한 경우가 있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자신이 충분히 익으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을 믿고, 적어도 젊은 나이에 억지로 스스로를 낮추려는 이상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은 비슷한 이유로 주변의 사람들을 낮추려고 시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우리의 주변에는 자신감이라는 에너지가 더 필요한 때이다.
자신에게도 주변의 사람에게도 믿음을 가지고 '된다'고 해야 한다. 물가에 내 놓은 어린애 마냥 걱정하거나 신경쓰는 대신에 믿고 기다려야 한다. 정말로 자신의 알량한 체면이나 동정 따위로 자신이나 주위 사람의 가능성을 죽이고 있는게 아닌지 생각 해 보아야 한다.
감히 보호나 위로를 하려들지 말고, 고개를 들어야 한다.
고개를 숙여야 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익었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니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고개를 숙여야 벼가 익는 것은 아니다.
난 나보다 젊은 나이의 사람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을 낮추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경험상 어떤 비하의 생각이나 발언이 일을 더 쉽게 해 주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힘들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 낸 사람은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수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도 힘들 일을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며 성공한 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니까. 아니면, 그 일이 자신의 능력보다 한참 모자라는 사람도 해 낼 수 있는 일이거나.
익지 않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마 세상이 그 정도로 썩어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힘이 들면 잠시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봐도 좋다. 우울할 때에는 우울한 음악이 효과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당신이 누구든 간에, 자신의 능력을 하수구에 처박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쉽사리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익은 벼에 비유하는 사람만큼 거만한 경우가 있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자신이 충분히 익으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을 믿고, 적어도 젊은 나이에 억지로 스스로를 낮추려는 이상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은 비슷한 이유로 주변의 사람들을 낮추려고 시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우리의 주변에는 자신감이라는 에너지가 더 필요한 때이다.
자신에게도 주변의 사람에게도 믿음을 가지고 '된다'고 해야 한다. 물가에 내 놓은 어린애 마냥 걱정하거나 신경쓰는 대신에 믿고 기다려야 한다. 정말로 자신의 알량한 체면이나 동정 따위로 자신이나 주위 사람의 가능성을 죽이고 있는게 아닌지 생각 해 보아야 한다.
감히 보호나 위로를 하려들지 말고, 고개를 들어야 한다.
고개를 숙여야 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익었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니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고개를 숙여야 벼가 익는 것은 아니다.
2015년 5월 3일 일요일
현실정치
오직 바보만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현실 정치에 뛰어들겠어."라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바보가 분명하다. 물론, 당원이 되고, 10만원 정도의 성금을 보내고, 원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당장에 뛰어들어도 되고, 현실정치이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그 이상 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는 방법은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두려워 하며 모두 멀리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단지 모이기만 해도 이마에 불에 달군 표식을 찍어대는데(은유적으로다가...), 새누리당이 아닌 다른 당원이 되면,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과장법으로다가...)?
한 두 사람이 말했을 때에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극히 억눌린 나라라는 것을 인정해야 겠다. 그리고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야 겠다.
아무리 그저 그런 삶을 살다 가면 그만이라지만, 소시오 패스도 나름 쓸 구석이 있는 것 처럼, 바보도 목숨을 내어 놓고 정치에 뛰어드는 데에는 쓸모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 내 이름과 '열사'같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으므로, 시위/집회에 참여하는 것 보다는 내가 잘 하는 쪽으로 시작을 하려고 한다. 정치 사이트 같은 것을 만듦으로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의 말을 하기가 힘든 것이 현재의 정치이다. 그저 바람처럼 떠 도는 찌라시가 여론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실정치'나 '정치참여'라는 말 한 마디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 뛰어난 수 많은 사람들이 미친듯이 날뛰는 정신없는 세상이 내가 원하는 세상이고, 한국이기에. 나는 더 바보가 되어야 겠다.
난 더 이상 내 친구들이 '박근혜'나 '여당'이라는 한 마디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림자 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이왕이면 바보가 되어 보자.
...
여전히 새누리당 쪽을 더 지지하고 있는 개인적인 입장이 난처하기는 하지만, 논의가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묻히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야 한다. 지금의 정부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국민들을 모욕적인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보수주의자이자, 한국을 자랑스러워 했던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정치에 대해 말을 하는 것 조차 두려워야 한다는 사실을 보며 정부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현실 정치에 뛰어들겠어."라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바보가 분명하다. 물론, 당원이 되고, 10만원 정도의 성금을 보내고, 원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당장에 뛰어들어도 되고, 현실정치이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그 이상 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는 방법은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두려워 하며 모두 멀리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단지 모이기만 해도 이마에 불에 달군 표식을 찍어대는데(은유적으로다가...), 새누리당이 아닌 다른 당원이 되면,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과장법으로다가...)?
한 두 사람이 말했을 때에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극히 억눌린 나라라는 것을 인정해야 겠다. 그리고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야 겠다.
아무리 그저 그런 삶을 살다 가면 그만이라지만, 소시오 패스도 나름 쓸 구석이 있는 것 처럼, 바보도 목숨을 내어 놓고 정치에 뛰어드는 데에는 쓸모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 내 이름과 '열사'같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으므로, 시위/집회에 참여하는 것 보다는 내가 잘 하는 쪽으로 시작을 하려고 한다. 정치 사이트 같은 것을 만듦으로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의 말을 하기가 힘든 것이 현재의 정치이다. 그저 바람처럼 떠 도는 찌라시가 여론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실정치'나 '정치참여'라는 말 한 마디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 뛰어난 수 많은 사람들이 미친듯이 날뛰는 정신없는 세상이 내가 원하는 세상이고, 한국이기에. 나는 더 바보가 되어야 겠다.
난 더 이상 내 친구들이 '박근혜'나 '여당'이라는 한 마디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림자 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이왕이면 바보가 되어 보자.
...
여전히 새누리당 쪽을 더 지지하고 있는 개인적인 입장이 난처하기는 하지만, 논의가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묻히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야 한다. 지금의 정부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국민들을 모욕적인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보수주의자이자, 한국을 자랑스러워 했던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정치에 대해 말을 하는 것 조차 두려워야 한다는 사실을 보며 정부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눈이 나쁘다 하면,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느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앞에 어떤 사람이 앉았다.
"저기 날아가는 비행기가 KAL이었나요?"
"아, 눈이 나빠서 잘 못 봤습니다."
그는 내가 대답하자 마자 조용히 탁자에 있는 내 지갑과 핸드폰을 챙기기 시작했다.
"왜 제걸 가져가세요?"
"아뇨. ... 전 가만히 있었는데요?"
...
아마도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행위를 보며 불같이 화내지 않는 것은, 바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많은 친구들이 가끔은 나를 보며 혀를 찬다. 그렇지만 나는 상대방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나를 이용하려 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마음이 생기리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착한척 하거나 착해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의 입장이 그렇다고 난 생각한다.
내 어린시절, 가장 충격적인 깨닳음은 정말로 열심히 만들어 내고 메소드 연기까지 완벽하다고 생각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사기가 잘 통하는 상대는 감정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심혈을 기울인 완벽하게 논리적인 거짓말은 평범하고 멍때리는 사람을 속일 수 없었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많은 사람들은 나의 예가 '어린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감정을 믿는 사람을 속이기 어렵다는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전두엽이 최근에 발달한 부분이라면, 간뇌는 파충류때 부터 발달해 온 기관이다. 이성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우리의 동물적인 감각은 항상 위험신호를 보내 온다.
어쨌건, 그런 짓들(거짓말, 도둑질, 사기, 등)을 그만두고 순진한 양이 되었거나 탈을 쓴 이유는 사람의 말 보다는 사람의 감각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껴서이고, 상대방을 짧게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이다... 라고 하기는 어렸고,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25년 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는 것이 이것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리 순수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도를 지나치게 선의로 곡해하지 않는다. 미안하게도, 나를 잘 아는 믿을 만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웃기도 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다수의 양의 탈을 쓴 사람들 역시 상대방의 의도를 모르거나 곡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보면서도 웃어 넘기는 것일테다.
아... 물론 회사에서 계급으로 누르는 경우는 웃어 넘기고 싶지 않은데 참는 것이고.
로맨틱하지 못하게시리... 대단한 사기꾼도 대부분 대상을 이성적이고, 자신의 논리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상으로 할 뿐이고, 우리들의 소소한 즐거움을 책임져야 할 작은 거짓말은 대부분 진심으로 넘어오지 않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어린 사람들 만이 상대를 속이려 하고, 상대에게 속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음...
내일이면, 수 많은 거짓말 아티스트들이 나를 속이려 할 지도... 오해가 있었다면, 다시. 속이는 것을 모두 순식간에 정확히 파악하고 속아준다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마음을 속이며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고 하자. 그리고 단정적인 표현들은 내 의견의 일부분이고.
어느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앞에 어떤 사람이 앉았다.
"저기 날아가는 비행기가 KAL이었나요?"
"아, 눈이 나빠서 잘 못 봤습니다."
그는 내가 대답하자 마자 조용히 탁자에 있는 내 지갑과 핸드폰을 챙기기 시작했다.
"왜 제걸 가져가세요?"
"아뇨. ... 전 가만히 있었는데요?"
...
아마도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행위를 보며 불같이 화내지 않는 것은, 바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많은 친구들이 가끔은 나를 보며 혀를 찬다. 그렇지만 나는 상대방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나를 이용하려 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마음이 생기리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착한척 하거나 착해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의 입장이 그렇다고 난 생각한다.
내 어린시절, 가장 충격적인 깨닳음은 정말로 열심히 만들어 내고 메소드 연기까지 완벽하다고 생각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사기가 잘 통하는 상대는 감정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심혈을 기울인 완벽하게 논리적인 거짓말은 평범하고 멍때리는 사람을 속일 수 없었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많은 사람들은 나의 예가 '어린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감정을 믿는 사람을 속이기 어렵다는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전두엽이 최근에 발달한 부분이라면, 간뇌는 파충류때 부터 발달해 온 기관이다. 이성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우리의 동물적인 감각은 항상 위험신호를 보내 온다.
어쨌건, 그런 짓들(거짓말, 도둑질, 사기, 등)을 그만두고 순진한 양이 되었거나 탈을 쓴 이유는 사람의 말 보다는 사람의 감각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껴서이고, 상대방을 짧게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이다... 라고 하기는 어렸고,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25년 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는 것이 이것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리 순수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도를 지나치게 선의로 곡해하지 않는다. 미안하게도, 나를 잘 아는 믿을 만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웃기도 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다수의 양의 탈을 쓴 사람들 역시 상대방의 의도를 모르거나 곡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보면서도 웃어 넘기는 것일테다.
아... 물론 회사에서 계급으로 누르는 경우는 웃어 넘기고 싶지 않은데 참는 것이고.
로맨틱하지 못하게시리... 대단한 사기꾼도 대부분 대상을 이성적이고, 자신의 논리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상으로 할 뿐이고, 우리들의 소소한 즐거움을 책임져야 할 작은 거짓말은 대부분 진심으로 넘어오지 않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어린 사람들 만이 상대를 속이려 하고, 상대에게 속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음...
내일이면, 수 많은 거짓말 아티스트들이 나를 속이려 할 지도... 오해가 있었다면, 다시. 속이는 것을 모두 순식간에 정확히 파악하고 속아준다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마음을 속이며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고 하자. 그리고 단정적인 표현들은 내 의견의 일부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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