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9일 월요일

물리적인 '혼'을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1.
소매치기가,
어떤 사람이 필사적으로 1년간을 모은 500만원을 가져가든,
친구들과 만나면 하루 술값으로 쓰는 사람의 500만원을 가져가든,
이 돈은 물질적으로 완전하게 같은 500만원이다.
아마도 소매치기가 어딘가 사용하는 곳도 같을 것이고, 이 돈의 운명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언듯 그럴듯해 보이지만, 상대방이 이 돈을 찾으려는 의지는 꽤 틀릴 것이고, 소매치기의 돈은 이 의지에 의해서 아주 약간의 확률로 다른 운명을 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본래 주인의 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소매치기가 도망을 치면서 쓰여지면서 조금은 다른 만남을 이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가고, 어렵게 번 돈은 어렵게 나간다고 한다.
무생물인 돈 조차 의지가 담기고 인연을 낳는다.
당연히 그 돈을 어떤 생각을 가지고 벌었는가에 따라서 그 당사자에게는 더 많은 생각들이 담긴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인 의지 없이 돈을 버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2.
사람의 의지는 공유되고, 전달되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방법이 혈연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로 부터 자식에게로 많은 지식들이 전달되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DNA로서 사람들의 의지는 전달된다고 본다.
생명체로서 형상이나 발달이나 방향성을 대다수 전달하는 것은 DNA쪽인 것이다.
그래서 겉모양새가 닮은 만큼 고집이나 생각이나 의지도 꽤 많이 닮아 있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자신의 부모와 조상에 대한 생각을 자극시키면, 피로 전달받은 우리들의 의지는 보다 방향성을 확연히 한다.
나는 이것이 조상에 대한 제사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조상의 혼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를 다잡기 위해서.
물론 자신의 의지를 다잡고 살아가면 조상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3.
국가와 민족에게 혼은 역사이다.
한민족이 반만년의 역사, 혹은 그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은 국민 한 명 한 명에게 큰 힘이 된다.
일제시대에 역사를 날조하느라 바빴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 한국인의 의지를 쉽게, 오래도록 꺽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가 닿지 못하는 먼 과거의 의지가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단군으로부터, 혹은 한웅으로 부터 내려온 강한 의지가 결국 한국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산이 되어 우리들로 표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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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혼'이란 '의지'이다.
아니, 피로 이어진 의지이고, 민족의 자부심으로 강화된 의지이므로, 의지보다 강한 의지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나를 받쳐주는, 다시 빛을 향해 걷고 뛰게 해 주는 밑바탕이다.

물론 나는 무교이며, 영혼을 믿지 않으며, 단일민족도 믿지 않고, 부모와의 관계도 그저 그렇다.
하지만 DNA를 믿고, 이어져 온 의지를 믿고, 내가 생각하는 혼의 힘과 의미를 믿는다.

나는 한국인이고, 제사를 좋게 생각하며, 생각을 가지고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