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4일 수요일

무상급식에 대해서

과연 충분한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자식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난 학교를 다니면서 세상이 평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만큼 하면 주변 친구들 만큼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며 보아온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몇몇 친구들은 충분한 advantage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실상 난 그들과 같은 선상에 있지 않았다.
내가 그들과 비슷해지기 위해서는 사실 더 많은 노력을 했어야 했고,
그들을 인식했어야 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랬다면 많은 결정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더 좋은 대학을 갔을거고, 그곳을 나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그 때도 그렇게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세상을 평등하게 여긴 내게는 공허한 외침이었던 것이다.

만약 교육이라는 것이 현실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부분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조금 더 현실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난 전체 무상급식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집안이 어려우면 무상급식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그 과정을 없애버린다면, 그들은 도움을 청하여 받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도움이 당연한 것이 되면,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모르고, 도와주지 않는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모든 아이들의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그들 중 몇 퍼센트의 아이들은 분명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왜 그들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도움이 필요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다른 이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현실을 감추는 것일까?
그것은 좋은 교육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난 전체 무상급식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해결해야 할 자식 급식비를 지원하는 것은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원하게 할 것이다.
그들의 짐을 덜어주는 것은 자식들에 대한 보호의지를 오히려 약하게 만든다.
자식에 대한 관심을 줄인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인식도 잘못된 쪽으로 이끈다.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에 대한 차이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같이 자식이 없는 사람은 사실 돈이 아깝다.
왜 세금을, 복지를, 없는 사람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대다수에게 사용해야 할까?
복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쓸까?
돈의 크기의 문제보다, 낭비라는 측면이 돈을 아깝게 만든다.

그래서 난 전체 무상급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결국 오세훈시장의 "시민에게 물어보자"는 결국 미달되었고,
투표를 하러 간 사람들만 바보가 되었다.
사실은 투표를 생각조차 안한 사람들도 바보가 되었다.
의도적으로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이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

이제, 왜 전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지, 그들의 생각을 더 들어보러 가야겠다.
그들의 생각이 충분히 나를 이해시켰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왕이면 한국 경제사정이 좋지 않을때에도 꾸준히 정책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
뭐, 아직 법적인 문제는 남아 있지만서도...

2011년 8월 14일 일요일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의 리바이벌 곡은...
결국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래를 정말 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의 연주와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들국화의 노래를 살리기는 불가능.
그렇다. 사실 노래를 그렇게 잘 불러 주어도, 나의 명곡들은 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원곡을 듣고야 마는 아쉬움은 어찌할 수 없다.

나가수가 계속 가면서 내가 정말 classic이라 생각하는 노래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다.
젊은 이들은 "오~ 이런 노래도 있었나, 꽤 괜찮은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리고 사실 조금 더 아는 노래를 하면 호응이 훨씬 좋기도 한데,
그 프로그램이 어찌 되었건, 나는 지켜주었으면 하는 boundary가 존재하는 것 같다.

이승환의 천일동안을 들으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고,
들국화를 들으면서는 '이러면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충분히 훌륭하게 불러 주었지만,
마치, 시의 운율과 공백(?)을 무시한 듯한 느낌이라 내 귀가 투덜대고 있다.

나가수 보다 jam competition 비슷한 형식이면 좋을 것 같다.
(두개의 어울리지 않은 단어라...)

혹시 내가 바보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콩쥐팥쥐나 춘향전을 외국 버전으로 봐 보면 알 것이다.
아, 그럴 것 없이 life on mars라는 드라마를 미국판으로 보면 되겠다.
(원판은 영국판임)

굳이 나쁘진 않지만, "원치 않아"라는 느낌이 팍~~~ 하고 올 것이다.

음...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의문스러워 진다.
애 자꾸 삐딱선을 타는거니?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한일전이 아니었던 경기를 보고

음... 오랫만에 한일전 A매치라고 해서 daum에서 느린 windows를 참아가며 보았는데...
한일전이 아니었다.

아마도 '일본 A팀 연습경기 투어'(삿뽀로긴 하지만)라고 제목을 붙이면 될 것이다.
조광래 감독도, 박주영도, 이근호도, 구자철도 한일전이 연습경기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까먹은 듯 하다.

보통 한일전은 모두가 치열하다.
그것이 공식전이건, 친선전이고를 떠나서,
전력상 한국이 앞설 때도, 일본이 앞설 때도,
선수들의 머릿속에는 그 수 많은 압박 속에서도 '이겨야만 한다'는 의식이 있다.
그리고 '한일전'이라고 불리는 모든 시합에는 그 의식이 관중의 눈 앞에 보인다.

선수들의 불어난 몸값이나 화려해지고 미세해진 테크닉을 뒤엎는 그 투지가 바로 신들의 전쟁터와 같은 '한일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레스와 아테나가 서로 갈라져 양군을 응원하며 피로 낭자한 혈투를 벌이게 만들기에,
한일전의 한 골 한 골은 주옥과도 같고, 기억에 남는 멋진 골인 것이다.

오늘 경기는 그렇지 않았다.
피가 튀는 혈전속의 골이 아니라 일본의 여유로운 패스와 화려한 볼 컨트롤 속에 슬쩍 슬쩍 넣는 무난한 골들.
왠지 보면서 "오, 훌륭한 패스와 골이었어."라고 말하며 박수를 쳐 주고 싶은 골이었다.
한국의 아까웠던 장면들은 분명히 격렬해진 한국 선수들의 투지가 조금은 엿보이기도 했으나,
그건 아마도 3: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겨난 "어, 한일전인데 이렇게 지면 난리날텐데..."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 처럼 보이지, '한일전'에서 나온 투지는 아니었다.
만일 구자철이 '한일전'을 뛰었다면, 틀림없이 골은 들어갔다.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한일전'이다.

게임에서 진 것도 그렇게까지 분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왠지 '한일전'에서 진 것이 아니라, 그냥 게임에서 진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이 '한일전'을 실망스럽게 한 것은 몇 번 보았지만(이 경우, 일본 축구를 욕한다), 한국이 '한일전'을 이처럼 엉망으로 만든 것을 본 것은 처음이다.
아마, 일본에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한일전'을 망친 한국 축구를 개탄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조광래 감독에게 책임을 묻고 싶을 정도이다.
주장으로서 한일전의 각오를 이끌어 내지 못한 박주영에게도 책임을 묻고 싶다.

일본에 메시와 호날두가 껴 있대도, 스코어 차가 5:0 이라고 해도 치열해야 마땅할 '한일전'을 다시는 한국이 망쳐놓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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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이미 세련되어진 현대 축구를 구사하는 두 팀이 더 이상은 '한일전'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축구 '한일전'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아닌지 겁이 난다.

2011년 8월 4일 목요일

점을 빼는 모험

피부에 발진이 생겨 땀띠인가 하고 피부과를 가니 버섯 종류를 잘 못 먹었단다.
주사와 약이 꽤 잘 듣는 듯 해 다음날 다시 피부과를 찾았다가...
어차피 약 때문에 술도 마시면 안되는 김에, 점이나 빼버리자 생각했다.

무려 35만원을 불렀지만, 뭐, 일단 각오하고 있던 바였고,
시간을 잡을까 생각도 했지만, 오래 생각해서 더 나은 결론을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운동을 하려던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다.
땀을 흘려선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본래 난 대로 사는 것을 좋아할 뻔 하였는데,
사실 사람이 점을 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끔은 불쌍하게 이타적인 녀석을 위해 돈을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쨌건 다시 움직이기로 했으니 철저하게 자신을 가다듬어 봐야지.
그리고 프로젝트를 더 빨리 잘 끝내는 것이 좋겠다.

점들이 깔끔하게 빠졌으면 하고 바래본다.

2011년 8월 3일 수요일

KTX의 소감? 유감?

KTX 처음부터 짜증이 난다.
자동발매기를 이용하는게 빠르다고 해서 사용했는데,
틀림없이 좌석이라고 해서 늦은 시간의 표를 끊었음에도 "자유석"으로 나온다.
또한 더 빠른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으로 나온다.

KTX를 사용하고, 무엇보다 빨리 떠야 한다면, 그냥 사람에게서 발권을 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켁, 게다가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도대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음... 그래도 일단 오르고 보니 앉을 자리가 기적적으로 있는데다가...
인터넷도 각 열차마다 되는 듯 하다.
이 부분은 쓸만하다....
라고 생각했으나, 인터넷 접속하는 순간 "이용요금 안내"가 뜨는군.
휴대 노트북에서 당일 무제한 2000원. 30분 1000원 이란다.
아무래도 그냥 iPhone5 나오기 전에 아무 폰이나 질러서 테더링 이용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가장 shocking한 것은...
도대체 들어갈 때도, 열차 안에서도, 나갈 때에도 왜 표 검사를 안 하는 것인가?
표를 안 샀어도 문제없이 도착했을 것 같다.

설마 인체자동감지 + rfid표?
welcome to BigBrother's future world...

그냥 무임승차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 두자.

계획의 의미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가 어떻게 될 것인지 계획하는 것.
저녁에 일기장에 하루가 어떠했는지 기록하는 것.
시작과 끝을 만들었으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본디 인간의 습성일 것이다.

그래서 아침회의를 하고 저녁에 정리를 하며,
주간회의를 하고, (금요일 저녁에는 별 게 없지만...),
계획서를 넘기고, 결과보고를 하며,
새해맞이를 하고, 종무식도 한다.

워낙 그런 것들을 파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것들이 본래 어떤 의미였는지,
아니 그 보다는, 그것들이 어떤 느낌들을 가져다 주는지를 잊어버렸던 것 같다.

하루를 일어나서 자신이 보내게 될 하루가 어떤 것으로 채워질 것인지 느낀다는 것.
새로운 도전이 있고, 다짐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것.
그것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신의 계획을 점검하는 의미라는 것을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다.

물론, 반복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 역시 그 의미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나와 같은 사람은 벗어나 있어서, 그들은 일상화 되어서 모르는 느낌.
그래서, "항상 깨어 있으라"고 주문하는지도 모르겠다.
무모한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상을 분해하고 재결합하며 항상 다시 발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나쁜 머리는 축복인지 모르겠다.
항상 반복이 새롭게 느껴지고, 언제든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계속 파괴하고, 다시 만들어간다. 더 새롭게, 더 나아지게.

그것이 아마 삶일지 모르겠다.

2011년 7월 1일 금요일

연애인 사회참여 문제란...

백지영의 끝장토론을 보니,
연애인의 사회참여 문제를,
"찬반은 있으나 연애인 참여는 가속화 될 것이고, 판단하는 일반인들이 더 높은 수준을 가져야 할 것이다."
로 마친다.

아, 예전의 나다.
모든 문제의 끝에 교육과 개인적인 판단의 중요성으로 마무리를 했던.
물론 대부분의 패널들이 문제의 근원을 정치의 무능함이라고 지적한 것도, 왠지 친근하다.

나는 물론 고학력자가 분명히 아니기는 하지만,
그 패널들과(사실 매우 훌륭했다) 나와 그들에게 수긍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저 토론이 끝난 후 생각해야 할 문제는...
'과연 사람들에게 분별력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일테다.

물론 직전에 '교육은 허황된 환상이다'라고 말했던 나로서는 이런 것을 짚는다는 것이 뭔가 꺼름직 해 지지만,
패널들의 성분을 유심히 바라보던 나의 눈은 "넌 정말로 그정도까지 바보인가?"라는 말이 들려왔다.
('성분'이란 그들의 "스펙"을 뜻한다)

결국 이 문제에서 찬반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제약할 수 없으며, 응원은 의미가 없으므로),
어느 쪽이든지, 앞으로의 방향은 결국 개인에게 달려 있으므로...
그들에게 교육등을 제공하건 말건 그들이 뛰어나져야 하는 것인데,
결국 다시 토론을 해 보자는 처음으로 돌아오는 결론이다.
혹은 토론 자체가 연애인의 사회참여와 같이 일반인들에게 주의를 환원시키는 (혹은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특성상, 꽤나 연애인들의 파급효과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보지도 않을 것이므로,
결국 있는 자들의 여흥 거리가 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정말로 이건 할 짓이 못되는 것 같지만...)
발길을 멈춰서자.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자질을 판단하자.
자신이 연애인이나 정치인이나 토론 프로그램이나, 하얀 가운에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을 하는 것도 사실 끝장토론의 (패널의) 결론과 비슷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
결국 연애인들은 사회참여뿐 아니라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장토론 패널의 결론처럼, 일반적인 사람도 사회참여와 정치에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해야 한다.
다만,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한 지적 능력이 되지 않으므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위 토론 프로그램에서 한가지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연애인과 일반인들이 더 열심히 사회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물론 이 이야기는 연애인들이 참여하는 것이 싫다면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을 더 돌려 놓는 방법으로 참여하는 것을 포함할 것이다.

2011년 6월 26일 일요일

거북이와 호랑이

플라톤의 지지자로서,
난 현재의 사회구조가 허황된 '이성'이라 불리우는 착각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자라나면서 항상 "인간은 평등하다"같은 말들을 듣는데,
사실 그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말도 안되게 "대통령이나 나나 똑같은 하나의 인간이고, 그러므로 평등하다."라고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사람은 똑같이 태어나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 아래, 우리의 귀천은 마치 최대한 공평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에 달려있다고 착각하게 마련이다. 재벌의 아들이든, 고관의 자식이든, 거렁뱅이의 자식이든 태어 날 때에는 모두 같은 선상에 있고, 그 이후에 뭔가가 달라졌다고 "지금은"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생각한 것이 더 자연스러운 생각이고, 결론이며, 현재 말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은 결코 우리가 태어날 때에 같은 선상에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거북이와 호랑이가 똑같이 하나의 동물로 태어났고, 똑같이 사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거북이를 호랑이처럼 빠르게 달리며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 육식 동물로 만들겠다는 말이나 비슷해 보인다.
아직 이해 못하는 사람이 있을테니 굳이 명시하자면, 거북이를 교육시켜서 호랑이처럼 살게 할 수는 없다.

사실 그런 것들은 사회 시스템이 일반적인 사람들을 달래 보기 위해서 나온 말이고, 실질적으로는 사람은 거북이나 호랑이 처럼 태어나면서 이미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기량이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 물론 정말로 극과 극을 비교하면 거북이와 호랑이의 차이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물론 멍청하게도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바보들이 "그래도 할 수있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물론, 내가 문제로 삼는 것은, 이런 차이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한결같이 자신의 자식들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육'에 대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교육은 "제가 가르치면 거북이도 멧돼지를 잡아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라고 말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다시 확언하자면 "그렇지 않다")

물론 이미 가진자들이 그들의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어떤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더라도 호랑이의 능력이 있다면 올라올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한 것은 맞지만, 그리고 그 방법에 이름을 붙여 '교육'이라고 한 것이지만, 교육은 연금술의 성공한 케이스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새에게 노래하는 법을 가르치고, 말에게 달리는 방법을 가르치며, 거북이에게는 헤엄치고 오래 사는 법을, 호랑이에게는 사냥을 가르치는 것이 옳바른 것이다.
사람에게도 각기 자신이 타고난 것이 있어서,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지 의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이 교육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월세를 낼 돈이 없어도, 그 두배의 돈으로 학원에 보내는 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나라면 그것을 '가진 자들에게 보내는 저주'라고 할 것이다. 가진자들과 통치하는 자들이 없는자들을 속인것에 대한 대가로, 그들의 생산품을 보내는 대신 스포츠와 음악에 재능을 가진 자들을 공무원으로 그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저주'가 아니면 뭐겠는가?

서로를 좀먹어 가는 중에 그 옆에서는 음악에 재능이 있는 자가 음악을 해도, 문학에 재능이 있는 자가 글을 써도 인정되지 않은 또 하나의 오염된 토양이 넓게 퍼져서 모두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있는자들이 집값을 올리는 것이 화가 나 집을 안 사기로 해 봐도, 결국 지금처럼 전세값이 올라서 살아가기 힘들지 않은가?
있는자들을 무리하게 따라잡아 보겠다고 다른 곳에 재능이 있는 자식들을 교육시킨다고 해 봤자 대학 등록금만 올라 교육이라는 환상도 물거품이 되고 말지 않은가?
어차피 이제 물러설 곳도 없어 보인다. 멍청한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그만 외쳐도 될 것 같아 보인다.

이제, 군인은 전쟁을, 시인은 노래를,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을 고려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부모님들은 그 돈을 모아 현금으로 주는 것을 고려해 보라. 대학 전에 1억 이상을 모으고, 자식이 컸을 때에는 그들이 무모한 교육도 돈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노후를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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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개인적으로...
제발 사람을 많이 구한다는 이유로 프로그래머를 하려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보는것 만으로도 괴롭지만,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다.
이분들은 종합격투기도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염두해 주었으면 좋겠다.

2011년 6월 8일 수요일

어쨌거나 study case를 열어보자.

뭐, 블로그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하나씩 만들어 가면서 작업을 해 나가는 것도 재미나겠지만,
그냥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이용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말하자면 여기에다가 그냥 블로그 하나 추가해서 글로 쓰기 시작하면 적당히 나중에 어떻게 되지 않을까?

일단, 시간이 녹녹지 않다.
운동도 아침저녁으로 하고, 복근도 만들고,
사무실 대신에 도서관을 이용하고, jsp와 java도 새롭게 배워나가고,
매일 한 권씩 소설책도 봐야 한다.
toeic시험도 볼 예정에, 공인중개사 시험과 회계까지.

그야말로 시간이라는 것이 아무리 있어도 부족한 형국이다.
물론, 그 와중에 드라마도 봐야하고, 술도 마시고 경마도 해야한다.
또 그 와중에 사람도 만나고 여자친구도 사귀어야 하지 않을까?
아,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도, 국내외로 가야한다.
계속 놀면 자금이 금새 부족해 질 테니 어느정도 돈을 벌만한 일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한가지 일이겠다.

음...
그러자.
시간이 너무 없다.
그냥 내가 편하게 쓸 수 있는 blog로서 시작을 하고, 나중에 RSS로 긁어서 새로 만든 무언가 옮기는...
복잡한 작업을 해 나가면서 속도를 Matrix의 neo 수준으로 만들어서 해 나가면 되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연락하지?

그냥 그쪽으로 오라고 메일로 보내자.

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참가하지?
....

gun and run.
일단 쏘고 보자.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will"일 것이다.

2011년 5월 25일 수요일

6시에 일어나기

3시에 자면 8시에 일어나고,
1시에 자면 6시에 일어난다라...

뭔가 생체시계가 단단히 고장났다.

인간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 숨쉬고 먹고 싸고 자는 것일 듯 한데,
이 부분이 좋지 않으면 삶이 고달퍼 진다.

가능한한 이놈의 잠자는 시간을 잘 정돈하기 위해서 낮에 졸거나 자는 일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5시간씩 자서야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혹은...
인간이 본래 5시간 정도 자면 충분하다고 가정하고, 수험생처럼 살아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뭐, 내가 수험생 때 가장 열심이 한 것은 7시간을 잤던 것이었고, 주말에 잠을 보충해 줬던 것 같지만서도...
여전히 잠 자는 시간을 나라시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단, 무조건 6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질 때 까지 잠들지 않고 버티기.
이렇게 하다보면 적당히 내가 자야 할 시간으로 회귀하지 않을까?

... ... 아, 아니겠다.
내가 늦게까지 깨어있는 이유는, 아쉬움 때문이 아니다. (더 이상은)
간 때문이야~ 라고 하면 비슷만 하고, 역시 술 때문이다.
난 결코 일찍 잘 수 없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없애자.
어차피 내가 사회적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인간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라기 보다는, 저녁 늦게까지 술마시는 것만이 사회생활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한국에서는, 혹은 나에게는 틀린 말이긴 하지만, 더 사회성 나쁜 사람이 되어보자.

2011년 5월 19일 목요일

뒤로뒤로

사람들을 만나면 또 느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은 앞을 향해서 발전해 나아가고 있는데,
혼자만 이렇게 계속 뒤로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삶을 사는 것도,
심지어 내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해 to do list를 만들어 놓은 것들도,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없다.

이렇게 모든 것이 미뤄지고, 뒤쳐지고 있을 때에는 피로가 찾아오고,
내가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유들만 늘어가게 되는 것일테다.

그리고 쓸데없이 그런 생각들을 아침에 일어나서 posting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쨌건, 벌써 5월의 3분의 2가 지나갔고, 남은 기간동안,
java를 gae와 함께 가지고 놀면서 작업을 해 나가면 될 것 같다.
유체이탈한 내 자신이 뒤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Do something useful!"

Dexter의 명언을 되새기자.
"Tonight's the night. And it's going to happen, again and again. It has to h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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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Dexter season 5가 12편으로 종료된 듯 하다.
또 하루를 보내겠군.

2011년 5월 15일 일요일

수술

드디어 어머니의 수술날이 다가왔다.

오늘 입실을 하고,
내일이나 모래 정도에 수술을 하게 된다.

미묘하게 어긋나 왔지만, 결국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물론, 전체 절제수술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는 보아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많은 사람들이 부분적인 절제술로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생각하는 것은,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것이다.
역지사지를 말하지만, 바쁜 현대 생활에서 그런 것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처음에 나는 스스로 비슷한 병에 걸렸을 경우, 치료를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 수술이 아니라 치료 자체를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 만큼 뛰어난 지성을 가지지 못했고, 더더구나 논리적인 것은 거의 망상 수준이다.
사람이란 본래부터 논리적으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사람이 만들어 낸 수 많은 교육들은, 자신이 논리적이라고 착각하는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그를 논리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더더구나 '최선의 답'을 찾는 것이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직관적 답을 자신이 배운 논리로 채워 넣어서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은 틀렸다"이고,
상대방이나 상대방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이해 안에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드디어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병에 걸릴 경우 치료를 고려해 보기 시작했다.

깊고 짧은 생각보다 긴 생각을, 긴 시간을, 그리고 그 안에서 깊이를 더해가면,
그것은 틀림없이 더 나은 생각이 될 것이다.

이제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단서를 발견해, 그것을 가지고 다시 노력해 간다.
(operation은 아니다. plastic surgery와 깊이 면에서 비슷하기는 하다.)

image

나 같은 사람,
그러니까 내성적인 사람은, 항상 상상한다.
외향적인 사람이 항상 바깥 세상에 집착하듯이, 내성적인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취해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양쪽이 모두 하나의 image에 불과하다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내성적인 사람이 만들어 내는 image(상상)는 더 멋있고,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빠르게 완성되지만,
그만큼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물론, 기타나 우파니샤드 같은 곳에서 알려 주듯이, 현실이라는 image 또한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생 전체, 혹은 인류의 생멸 자체도 끊임없는 시간들에 비교해 보면, 한 순간의 백일몽과 같을 것이다.

자신의 조그만 이득을 얻기 위해서 더 나은 상황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한 말은,
'진짜'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진짜'라는 것은 결국 '더 나은 현실적 방법'을 뜻한다.
말하자면, 나처럼 내성적인 생각에 집착을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현실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방법론 보다, 더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항상 상상의 세계는 현실보다 더 빠르게 교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 나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 생각들이 놓치고 있는 논리적, 우연적, 무질서적 귀결을 현실은 쉽게 알려 주기도 한다.
상상이 논리적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논리가 놓치고 있는 수 많은 것들을 현실에서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성적인 사람 입장에서는 현실은 상상의 부족한 논리를 채워주는 컴퓨터와 같은 도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자신의 상상들을 빠르게 현실에서 확인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계산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
머리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할 때, 그것을 계산기 등을 이용해서 확인을 하는 것이 정확하고, 앞으로의 계산에 잘못된 결과를 계속 기초삼아 하게 되지 않듯이, 우리는 더 자주 현실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양쪽이 모두 image라고 하면, 상상쪽은 고속이지만 단일 처리인 risc cpu 라면,
현실은 cisc 이면서도 병렬적으로 매우 많이 연결된 처리장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둘을 굳이 연관시켜 보자면, 대용량 슈퍼 컴퓨터에 연결된 50억의 단말기일 것이다.(matrix네...)

자, matrix에 연결할 시간이 되었다.
내 스스로 항상 상상에 만족하였지만, 내 바로 앞에 있는 이 커다란 것을 조금 더 자주 사용해 보아야 겠다.
보다 큰 효율을 위해서, 내성적인 사람은 현실을 조금 더 이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5월 14일 토요일

이사 성공

그렇다.
드디어 이사에 성공해서, 이제는 이태원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직 청소라든지, 여러가지 일을 뒤로하고 주말을 즐기고는 있지만,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항상 두근거리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하지만, 이것을 쓰고 있는 시간이 대변하듯이,
불면증과 코막힘같은 새로운 질병도 함께 따라오게 되어있는 듯 하다.
물론, 우연이 아니다.

이곳의 환경은 열악하다.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오월임에도 춥고, 공기또한 좋지 않은 것 같다.
저녁에 수많은 먼지들을 처리 했음에도 코가 막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방의 구조상 문제이거나, 곰팡이 같은 것의 문제일 수도 있을 듯 싶다.
아, 일단 창문이 단일창인 것이 원인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많은 문제점들은,
하나하나씩 가정을 세우고, test를 해 나가는 것으로 즐겁게 대처해 나가면 될 것이다.

우선은 즐거워하고 볼 일이다.

다시 잠을 청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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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지로 keyboard back-light를 써 보기는 처음인 것 같은데,
매우 멋진 것 같다.
어둠속에서 무언가를 하는데 매우 적합하다.
다만, 최소의 불빛으로 항상 충분할 것 같은데, 왜 수 많은 단계의 불빛 조절이 있는지 이해는 되지 않는다.

2011년 5월 11일 수요일

여전히 게으름.

아이고,
이러다가 영원히 이사 못 가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미 날이 지나고 새벽 1시 23분 이지만,
정리는 개뿔, 여전히 뭔가 비어있는 것을 찾아서 메우고 있지만, 절대로 메워지지 않는 것이다.
단지 그냥 고장난게 아닐까? 나 자신은.

뭐, 어쨌건 내일도 날씨는 좋을 것 같다.
또한 이사는 15일 까지만 하면 되니까...
calulating...
내일과 모래가 있겠지만, 이번주의 mission을 모두 마치기 위해서는, 내일만이 최적이다.
과연 나는 내일까지 이사갈 수 있을 것인가?
별로 긍정적인 결론에는 이를 수 없지만, 하는데까지는 해 보자.

굼뱅이 기어가듯이 당연한 것들을 수 조각을 내어서 하나씩 해 나가는 방법이 있다.
(물론 멍청한 방법이지만...)
일단, 이사가는 것을,
전화번호 알아보기.
가격 알아보기.
전화 걸기.
정리하기.
옮기기.
트럭에 올리기.
등으로 나누어서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다음달 까지는 여기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
물론, 정신과 상담을 대여섯 차례 받은 후, 그 다음날 하루에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아~ 나는 진정으로 망가진 것일까?
아니면 백수화가 순식간에 진행되어 버린 것일 뿐일까?
음... 그냥 맘 편하게 생각되는 대로 생각하고, 인생 적당히 살아가도록 하자.
어차피 망가진 인생이다.

이사

몇일 전부터 이사를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길일(?)로 잡은 것이 오늘이었다.

물론 오늘 하루, 게으름 속에 몸과 마음을 던지고,
하루종일 뒹굴뒹굴 거리며 맑은 날씨의 하루가 또 져 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백수가 다 되었구나 한다.
이대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경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나치게 게으르지도, 지나치게 애쓰지도 말라고 했다.
아직 7시니까...
세수를 하고,
산책을 하고,
오는 길에 쓰레기 봉투와 저녁 거리를 사 와 보자.

이 곳에서의 삶을 조용히 정리하고,
내일 이사 계획을 세우고,
물건들을 정리해 놓아야지.
내일은 또 다시 새로운 장소에서의 삶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하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려는 시각에 새로운 시작을 생각해보며,
시간들을 즐겨나간다.
부지런한 백수가 되어야겠다.

2011년 4월 19일 화요일

빌어먹을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주주의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증명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틀리다고 생각하면 소용이 없다는 부분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틀리다는 결론이 절대로 나올 수 없다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란 현대의 족쇄이다.

만약 두 사람이 "민주주의는 오류가 많다"고 들었다면,
가 말을 한 다른 사람이 자신이 "민주주의는 오류가 적다"고 말을 했다고 해도,
두 사람의 말이 옳은 것이 된다.
결국 그 말을 한 사람은 처형을 당한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그 말을 한 사람이 옳게 말했느냐가 중요하지, 다른 사람이 그렇게 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공산당이 싫다고 말했는데, 두 사람이 "저 사람은 공산당이 좋다"고 말했다고 증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한 말이 변할수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두명이 말을 하면, 실재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숫자로 결정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들었어"가 내가 말한것이 되는 것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것이 어째서 옳을 수 있는가? 어째서 자신이 한 말이, 그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해서 바뀔수가 있는가? 어째서, 탄소 화합물이 말에 의해서 금이 될 수 있고, 어째서 지구가 도는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하늘이 도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왜, 여지껏, "그래도 지구가 돈다"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민주주의라면, 왜 그것이 여지껏 옳다고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일까?
그것조차, 민주주의 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틀린것은, 틀린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옳다고 믿어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어째서 그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태양이 돈다라고 말하는 것을 용납 받는가?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social frendly한 생각은 항상 받아들여지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항상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이보다 명확할 수 있을까?
사람은, 그가 뛰어난 과학자든, 멍청한 일용직이든, 노숙자든,
그저, 자신의 이기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 뿐이다.
자신에게 용이한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기에, 그것이 옳다 말하는 것 뿐이다.
지성은, 지나친 낭비이다.

우리는 토론 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사실 토론은 그 목적과 상반되게도, 그저 자신이 살아가는데에 불편함이 없는가를 재는 척도일 뿐이다. 사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에게 불편함이 없는지만을 재는 것 뿐으로, 그들이 이성이라든지 지성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학습된 것일 뿐이다. 아니, 학습이라기 보다는 주입된 것이다.
자신에게 판단의 능력이 있다라는 환상조차 주입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입력된 것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화는, 토론은 의미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세상이 의미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일테다.

나 역시 그들의 일부이므로,
말하자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상황이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멈춰야 한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성의 증거가 아니라, 오류인 것이다.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생각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일반적인" 사고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자. 사라져가자.
빌어먹을 민주주의적인 대한민국을 위해서. 대한민국 만세.

2011년 4월 7일 목요일

새로 시작하기

그렇다. 나는 새로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이것은 또 하나의 진통이다.

마음은 날아가고 있는데, 바닥부터 닦아 나가야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임에 틀림 없다.
물론, 미련하게 글자 그대로, "내일 일어나서 걸래로 바닦을 닦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자신을 추스르고 있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먼저 자신을 닦아나가기 시작해야지만, 무언가를 시도하여도 장애가 덜한 법이다.

음...
이야기가 튀기는 하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배우자"라고 말했던 다른 나 자신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다시말해, 지지하는 개발방법론으로서 agile은 어떠한가?
난 agile 방법론 역시 닦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test를 끊임없이 하지 않는 agile방법론은, SCM을 적절히 쓰지 못하는 프로그래머가 있는 team은, 당연히 agile하지도 않고, 버그를 양산해 내고 있을 것이다. 팀 자체가 만들어 지려면, 개인이 스스로 닦고, 팀을 닦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억지인데, 대략 비슷하게 끼워 맞췄다.)

음...
역시 위는 억지이다. 닭이 먼저이든, 달걀이 먼저이든 간에, 우리는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나아가면서 자신을 닦고, 주변을 정리해 가는것이 더 맞는 듯 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나처럼, 느리고 고통스러워서 목표를 잊고 헤메이다가 다시 생각나면 바닥을 걸래로 닦고 있을 것이다.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결국 스트레스를 어느정도 감수하면서 나아가고, 메꾸어 가는 것이 결국 삶을 목표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이겠다.

여전히 난 불안정하고, 때문에 아직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내용이 튀지만, 마약은 어떨까?
물론, 다른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생산되는 내 뇌 속의 엔돌핀이나 아드레날린을 말하는 것이다. 지나친 optimism으로 sociopath가 되어버린 이 성격을 조금 진중하게 바꾸어 놓을 필요가 있을까? 아니면, 이것을 내 장점으로 받아들여도 좋은 걸까?
분명히 나는 이성적인 인간은 아니다. 또한 더 나은 만족을 위해 꽤 긴 시간을 인내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것이 내 얼굴을 앳띠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얼굴은 36이라는 숫자와 맞지 않는다. 또한 lead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얼굴도 아니다.
음... 분명히 나는 현실에 적합한 인내를 배워가야 할 것이다. 아직 다른 사람들이 내 현란한(?) 거짓말을 믿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범죄이다. 내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에게 보이기 전에 그들에게 내 지식을 가지고 포장하여 vision이라고 보여주는 것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명백한 사기이다.

종합하자면,
의미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인내를 가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것.
그때가 내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때이다.
이 기간을 3개월 이상으로 설정하고, 절대로 해 내어 보이자.

그렇지 않으면, 요란한 빈 수레로 많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잃어 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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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머리가 나쁘면 반복하는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내일도 난 "또 새로 시작하기"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2011년 4월 6일 수요일

샤워 후에.

이미 이 전에도 한 말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국정부와 과학자들이 짜고치는 고스톱판이 점점 더 신의를 잃어만 가고 있는 듯 하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이 일본 원전피해가 가장 적을 것이라고 장담한 멍청함은, 그것이 어린아이가 한 말이 아니기에, "고의적으로 속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권위자들이 하는 말은 지금도, 앞으로도 고의적인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은 그들이 국가의 요청으로 하는 거짓말이 국민을 속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타당성은 국민들이 속아주는 가운데 안정성을 유지할 때나 가능한 말이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얼토당토 않는 비 현실적인 거짓말을 할 때에는,
그 훌륭할 수 있었던 목적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들의 권위만 깍아내린 것 뿐이다.

이제 비가 내리는데, "미비하지만 혹시 모르니 잘 씼어라." 라고 말을 하면,
우리는 "절대로 비를 맞아선 안되고, 요오드제를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오히려 대비를 적게 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사실상 한국보다 조금 더 open되어있던 일본을 비례적으로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이미 큰 영향을 받았더라도 내년까지 숨길 것은 자명하다고 보인다.

더 이상 우리가 국가에 통제된 과학자들 말을 믿을 이유는 없다.
다만 그들의 의중을 헤아려서, 혼란을 자제하는 가운데 그들이 말하는 정도의 100배의 오염 수준을 각오하고 대처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혹은, 행정부쪽과 과학자들이 나란히 1시간 동안 비속을 걷는 퍼포먼스라도 해 주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거짓말을 적당히 했어야 했다.)

2011년 4월 5일 화요일

고향

자신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
가끔씩 자신의 대부분을 쓸어가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폭풍이었든, 지식이었든, 삶이었든.
끊임없이 다른 방법으로 나 자신은 파괴되고,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가끔은 삶이라는 것이 쌓아가는 것인지, 파괴되는 것인지 헤깔릴 때가 있다.

어쨌건, 내가 이 '폭풍의 고향'이라는 모티브를 다시 꺼낸 것은,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era가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반복은 영원히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이제 조금씩 익숙해져 갈 때도 되었지만,
잔해를 추스리고, 다시 터를 닦고, 남은 지식들을 또 앞으로 어떻게 써 먹을지 고민하면서 다시 부지런해 져야 하는 것은 항상 나를 두렵게 한다.

이제 오래된 새로운 시작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둘러보자.
to do list를 만들고, 환경을 정리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매일같이 내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아,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결정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trac을 띄우고, hosting을 하고, 항상 접근하게끔 하는 것이 먼저이겠다.
그 후에, framework를 다져놔야지. (이건 사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무엇보다 펜을 드는 습관을 들여야 겠다. 키보드는 손가락에 적합하지 않다.

뭐, 대략 이렇게 정신없이 생각하고 나면 또 금새 잊어버리고 길을 잃고 만다.
마치 큰 지진 후의 여진과 같이 내 시작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어야 겠다.

그래. 여기는 폭풍의 고향이다.
내게는 아늑한 곳이겠다.

2011년 3월 24일 목요일

오리 날다.

맞는 이야기라도, 많은 사람들이 믿기 힘든 이야기라면 그 사람들에 맞춰서 이야기 해야 한다.
벌래가 일반적으로 더 깨끗하고 고단백이라고 해도,
벌래를 구워서 내 놓으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설마, 정부 홍보처나 대변인실에서 이런 말을 해 줘야 알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본 원자력 발전소가 문제를 일으키자 마자,
그들은 뻔히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맞다고 주장할까?

나는 솔직히 일본보다 더한 쓰나미가 덮치고,
진도 9의 지진이 발생해도 멀쩡하다고 말하는(우기는) 슈퍼 한국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나 역시 그것이 좋은 발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국민들이 마음이라도 편한쪽이 낫지,
"우리는 폭발했을 겁니다"를 듣고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왜 터무니 없는 말을 하는가이다.

일본이 내진 설계가 더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혹은 꼭 그렇진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한국이 그런 지진이나 쓰나미가 올 확률이 적다는 것을 미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물론, 사실상 한국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학자들이 말하겠고,
국민들의 불안감이 조금은 더 높아 질수도 있겠지만,
설마 "한국은 완벽한 안전지대입니다." 보다는 그럴듯 하지 않을까?

심지어, 미국, 러시아, 중국은 이번 원자력 발전소(방사능)에 영향을 받는데, 한국은 "그럴 리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는데,
사실 정답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이 영향을 받지만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만 빼고 영향이 있다"거나, "영향이 없다"는,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믿겨지지는 않지 않은가?

바람도, 해류도, 모든것이 "한국만 빼고" 라는 것은 아무리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라도 오히려 불안하다. 게다가 체르노빌 이후로 전 세계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거짓말이 아닌가 의심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일단 "오리가 날아가고 있었는데...."는 농담으로 받아들여 진다.

한국이 놀라운 나라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설령 오리가 날았더라도, 우리는 바보취급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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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믿기지 않는 말 때문에, 소금 파동이나 방독면/요오드 사재기가 없었다는 부분은 (기이하지만) 인정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광우병 촛불집회쪽은 코미디다.
어차피 사람들은 담배가 해롭다고 믿는다.

파우스트 아이러니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을 맺어서 잘된게 문제일까?
잘됐기 때문에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것이 문제일까?

물론 괴테에게서는 그 시선보다 더 나은 어떤것을 이루어 내지만,
나는 아직 용기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도장은 찍고 봐야 하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 것은 과연 지식을 두고 행동이나 감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가 정확한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
자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던 그 반면을 이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더 높은 곳을 원한다면 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다른 반쪽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무모한 파괴적인 행위가 결국 높이 올라가서 떨어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난 앞으로 내가 정말로 싫어했던, 앞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난 불안하고,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나 보다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이 해도 잘 되지 않는 일.
내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앞에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일을 못하게 되는,
내가 두려워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일들을 이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동안 자신에 심취해서, 누구보다도 더 좋은 스킬을 쌓고,
다른 사람이 관리자가 될 때, 영원히 개발자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항상 다른사람들이 더 낫고, 나는 기술로 승부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결국 눈 앞에 메피스토의 엄지손가락이 보여진다.
그렇게 나는 도장을 찍을 것이다.

아....
이제 그만 두자.
난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악마에 가깝다.
메피스토는 본래의 내가 만들어낸 optimism일 것이다.
(게다가 나는 지옥쪽을 더 선호한다.)
내가 두려운 것은, 또 한 번의 급격한 변화일 뿐일테다.

또..., 다시 파괴하고, 또 다시 적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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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등에" 칼을 맞게 될 것이다.

2011년 3월 23일 수요일

planning tool이 필요하다.

blog처럼 쉽게 쓸 수 있으면서도, 뭔가 잘 정돈된 planning tool이 필요한데,
생각보다 적당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mail처럼 습관화 되어서 항상 바로 열어보게 되는, 그래서 내가 가야할 곳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그런 것은 없을까?
오랫동안 trac을 혼자서 사용하다 보니, todo list가 굉장히 마음에는 드는데,
이것을 혼자 사용하기 위해서 설치해 놓는다는 것이 조금 귀찮기도 하고,
google에서 제공하는 것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을 할 것이라서 open source project에 제공하는 것을 가져다 쓰기도 좀 그렇다.

1. 이 참에 milestone이나 ticket등을 이용하는 개인적인 planner를 만들어서 open source로 공개한다.
2. 그냥 trac을 깔아서 집에서 혼자 쓴다.

음...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정말로 적합한 개인 planner가 필요하다면, 잘 찾아보고 없으면 만드는 것이 맞다.
대략 이런 정도가 맞지 않을까?

1. open되고 내가 원하는 planner가 있는지를 찾아본다.
2. trac을 2개 설치한다.
3. 한곳에서 개인적으로 쓰고, 다른 곳에선 더 나은 개인 planner를 만들어 간다.

개인이 해 나가야 하는 일들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해가 바뀌어도 자신이 어떤 계획을 세웠고, 그것이 얼마나 되어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이어트나 금연 등에도 좋은 계획과 결과검토가 필요하지만, 그저 날자나 세고, 몸무게나 달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사실, 이런 구체화 된, 유행하는 것들은 여러가지 tool들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일상적인 것에 사용할 것들이 없고, 또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없다.

보다 편리하고, 단순하고, 전문적일 수 인는 개인 trac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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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프랭클린 플래너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http://www.plandays.com 를 찾기는 했지만, chrome에서는 가입조차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