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8일 토요일

new approach

난 초반을 잡는 타입이다.
그리고 초반밖에 못 잡는 타입이기도 하다.

내가 초반에 러쉬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집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집중력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꽤 자연스럽게 이런 형태로 살아오다보면, 초반에 집중을 하는 것이 나중에 하는 것 보다 훨씬 큰 이득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당연히 집중하지 못했을 때에 흘러 들어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서 이득이 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를 얻은 상태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득이 된다.

내가 초반에 놀라운 것을 보여주면, 성실함이라도 보여주면,
상대방은 항상 내가 놀라운 것을 해 내거나, 적어도 성실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만심을 부르게 되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얻는 것들이 많아 질수록 더 쉽게 집중력이 흩어지고는 한다.
이 집중력의 파도를 어떻게 타는가가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일테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 집중력은 끊임없이 올라가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은 flow보다도 훨씬 고차원 적으로, 거의 핵폭탄과 같은 폭발력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런 상태를 사용하는 사용자(?) 측에서는 집중력에 대한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허무감"이라는 숙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것이 문제다.
자, 어마어마한 폭발력이 있는 뭔가를 쏟아 부었다면, 그것을 정복한 후 무엇을 해야할까?
결국 새로운 것을 찾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뭔가 다시 핵폭탄과 같은 것을 쓸 수 있을 때 까지.

어쨌든, 나는 새로히 도전할 것을 찾았다.
그리고 퍼붓고 있다.
어쩌면 극한까지 닿을지 모른다.
나의 세상이 나의 파괴보다 더 빨리 넓어 지기를 기도해 본다.

2009년 2월 24일 화요일

재지말고 나가자.

사람이 생각대로 사는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 나도 알지만,
지금의 나는 뭔가 모자르다.
뭔가 재고있나?
낯을 가리나?
마치 아이를 바라보듯이 또 다시 자신을 바라봐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쨌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얼마나 더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끝을 마주했는가의 문제이다. 어려운 문제는 항상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어도, 그것은 일종의 레크레이션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자신을 믿는다면, 더 현명하게 대처하자. 하루가 끝나면, 보다 자신에게 자랑스러울 수 있는 자신을 마주해 보자.
분명히 지금은 아니다.
뭔가 더 나은 내가 나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려는 방향을 항상 확인하자. 2009년은...
자신의 감각을 믿고 있는 동안에는 나의 기대는 언제나 무모하지 않다. 나는 그런 내가 필요하고, 충분히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왜 허둥대는가? 결국 앞으로 갈 수 밖에는 없지 않은가?

2009년 2월 23일 월요일

정상적인 생활?

역시 규칙적인 회사 생활은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11시 인 것을 보고 빨리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다시 세상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뭔가 물고 늘어지는 즐거움은 없지만, 짧게 끊어서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 조금씩 이를 악물게 된다.
글을 쓰다가도 운동을 해야된다는 생각에 팔굽혀 펴기를 하고, 생각을 하다가도 일단 끝내야 하는 일에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한정된 시간속을 살아가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 하고 생각된다.

너무 극한의 것을 좋아해서인지, 균형을 맞추는 일이 낯설다.
물론 원하는 것은 극명. 균형을 맞춘 상태로 극한까지 가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면 일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과연 정확하게 하는 것이 빠른 것인지, 빨리 보여주는 것이 빠른 것인지 헷깔리게 된다. 나는 보통 이런때에 자신의 감각을 믿고 맡기라고 말하지만, 실재로 하는 것은 감각을 철저히 배제하고, 이성이 모든것을 통제하도록 하고 만다. 그것이 불안감의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이려니 생각한다.
이성을 기르자. 감각을 믿어주자.

어제보다 훨씬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가자.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개구간과 폐구간

수학에서는 개구간인가 폐구간인가가 중요하게 생각된다.
개구간이란 어떤 숫자 자체가 그 구간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폐구간은 반대이다.
보다 쉽게 느끼기 위해서는, 개구간은 -2< x < 3 인 거고, 폐구간은 -2<= x <=3인 것이다.
여기에서 -2와 3이 이 구간 안에 포함되는가 되지 않는가의 숫자 하나의 문제일 뿐이지만, 수학적으로는 이 사실로 부터 많은 명확성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그에 따라서 명증할 수 있는 여러가지를 매우 많은 말들로 어렵게 써 놓고 있다.

-2와 3의 사이에는 수억조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무한한 숫자들이 있는데, 왜 이 숫자의 포함 여부가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수학적으로는 구간이 무한히 접근하는가의 문제와 어떤 부분으로 덮을 수 있는가의 문제 등이 있지만 천억에 천억을 천억번 곱한 것 보다 많은 -2와 3 사이의 수들이 무시당하는 수모를 당하는 동안 수학적이지 않은 어떤 의미를 이들이 과연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chaos이론이나 complexity이론에서 나오는 혼돈의 가장자리 라는 개념을 들으면서 이 부분이 굉장히 궁금해 지게 되었다. 물론 두 이론 모두 수학적인 모델링이 강하게 들어간 이론이긴 하지만, 왠지 다른 이론에서 그 끝의 명확성이, 혹은 그 부분들이 항상 주목을 받는 이유가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왜냐면 이런 것들은 삶의 시작과 끝만이 의미를 지니고, 마치 과정이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극단의 것을 시도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고, 그런 것들을 발전시켜 나간 헌신들이 의미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중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눈이 소복하게 내린 곳에 발자욱을 내며 즐거워 하던 순수한 시절부터,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 자신을 황야로 내모는 우리들의 무모한 도전까지.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는 근로자의 날 같은 때에만 우리네를 지탱해 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존경을 보내곤 한다. 창의 끝은 창의 몸체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모든 것이 있다고. 물론 이런 말에 속아넘어가 주는 사람들이 50%정도는 있기에 세상이 온건히 카스트 제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364일 동안 99%정도의 사람들이 존경을 보내는 사람들은 극단에서 상대를 찔러 쓰러트리는 창의 끝과 같은자들 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를 끝없이 새로운 곳으로 내모는 잔인한 끝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발 옆에 파멸이 있는 혼돈의 가장자리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안정을 원하는가? 나 역시 안정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옳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제 다시 물어봐야 할 시간이 왔다. 화장실로 급히 뛰어가서 거울을 보라. 여전히 눈이 살아있는가? 정말로 살아있는가?
이제 다시 저 극단으로, 저 가장자리로 가야 할 시간이다.
-2와 3 근방에서 compact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별하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시간이다.

결론은 이상하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전제이다. -2와 3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1.414... 같은 위치에서 헤메이며 안정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구간인지가 중요할 때가 있을때도 있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는 그 극단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의미를 위해서건, 우리가 초라하게 받을 성적표에 대해서건, 그 극단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힘을 내어 저 폭풍치는 곳으로 가자.

2009년 2월 15일 일요일

Component + Controller = ?

Composite Model은 물론 어디나 쓰이고 편리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특성을 자주 지워버리는 문제가 있다.

보통 glype와 같은 곳에서 부터 발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물론 처음에는 하나 하나의 단위를 부여하면서 하나의 멋지게 정리된 분류를 생성해 낸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것들이 하나 하나 발전하게 되면서 제약적인 부분이 생긴다.

특히 Modeling에 익숙하지 않은 개발자가 사용하게 되면,
발에 맞지 앉는 구두를 신은 것 처럼 계속해서 거슬리는 규칙들을 달고가게 되고,
수많은 메모리를 낭비한 후에 버리고 마는 것이다.

잠시 머리속에 web programing에서 controller와 component를 하나가 되게 개발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ActionScript의 경우(라기보다는 flash등), 처음부터 movie와 sprite등이 모두 compositable하게 만들어 졌고, 잘 만들어진 계층적 구조를 가진 object들이 되었긴 하다.
하지만, 개인이 이런 클래스들을 당장의 편의성 때문에 시도해 보면, 메모리나 지나친 단계가 많아지는 composite object를 적절히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의문이 생겼으니 시도해 보는 것이 순서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현재, component가 요구하는 사항은 post나 get 방식의 데이터이다.
controller가 요구하는 것은 현재 없다. Front Controller만이 URL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controller 가 Front Controller와 상당히 분리된다면,
contoller는 그대로 component가 될 수 있다.
다만 여러가지 이유로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은 일단 controller로서는 의미없는 hooking을 하게 되는 점이 있고,
component로서는 의미없는 Controller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Controller라는 이름을 없애도 되지만, Front를 건드려야 되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이 둘을 통합하면 component와 controller의 구분 없이 제작 후 가져다 붙이기가 가능해 진다.
무엇보다 테스트를 따로이 controller에서 만들어서 할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test는 만들어야 할테니 그리 큰 장점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도해 볼 것은 단순하다.
아직 이름이 비어있는 Component시리즈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빠르게 난관에 봉착해야만 포기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개발속도의 문제

생각없이 자판을 두드려 대는 것도 가끔씩은 재미있다.
게다가 추가보너스로 diff가 길어져서 뭔가 많은 일을 해 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고민없는 개발은 왠지 생각으로 자동화 할 부분을 노가다로 대체한 것 같은 느낌이 께름칙하다.

반면에 Methodology나 Modeling을 열심히 고민하며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다보면,
이쪽은 '자주'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생산된 것은 없고 앞으로 해야 할 것들만 아득하게 느껴진다.

뭐, 결국 답은 '중도'같이 시원찮은 것이겠고,
남은 문제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부분이다.
어디가 적절한 Mid 값이 되는 것일까?

agile 진영을 보면, 경험주의적인 방법론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린다.
하지만, 여전히 제시해야 할 개발시간을 비슷하게라도 측정해야 하고,
사소하고 반복되는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개발환경을 계속 자동화 해야 한다.
결국 Mid값을 알기 위한 경험주의적인 방법론은 일단 찍고봐야 하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이 부분에서 왠지 agile 방법론이 직접적인 도움을 안준다는 느낌이 들곤한다.)

일단 찍고, 짧은 사이클로 반복하고 교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역시 항상 정답이다.
계속 하다보면 개발속도가 빨라지는 지는 것도 당연지사이고.
그렇다면 지금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개발속도가 늦는 것 같으면, 다시 고민하고 다시 계획하고 다시 실천한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금강경이나 바가바드 기타를 한 번 더 읽어준다.

model화된 view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view단이 designer의 몫이 될 수는 없다.
같은 패턴의 view가 수백, 수천이 될 동안도, 그것이 패턴화된 모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프로그래머가 미리 나눠놓은 디자이너와의 경계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래서 dream weaver같은 곳에서 쓰이는 멀티탭의 구조라든지 하는 곳에는,
디자이너용 '템플릿'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녀석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js파일과 잘 연동 되어서 디자이너든, 프로그래머든 신경쓰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copy & taste 형식의 많은 코드들은 그것이 같은 template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해도 코드를 읽는데 불편함을 준다.
그리고 당연히 한꺼번에 어떠한 변화를 주기 힘들다.
find 와 egrep등의 정규표현식을 이용한 방법이 머리속에 지나가지만, 여전히 좋은 구조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역시 component화 된 프로그램이 사용할 수 있는 skin으로서 패턴화된 html 모델이 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09년 2월 8일 일요일

jquery와 cake

앞으로 jquery를 이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var Test = Class.create({
});
같은 형식은 이제 못 쓰는건가?
뭐, 일단 이것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두 개를 같이 쓰는 것인데, 어디서 충돌할 지를 알 수 없으니 원...
일단은 prototype2jquery 같은 느낌으로 한 번 훑어보고는,
만들면서 익숙해 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략 생각하는 것들은 비슷하겠지.

회사에 책 몇 권은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훑어보기의 귀재가 되어야 겠다.

그러나 정말 문제인 것은 cakephp인데....
굉장히 강하게 방법론을 제시하는 framework라고 생각된다.
거기에다가 Acl 같은 부분에서는 sql table을 사용하면서도 ruby + rails 같이 console명령으로 셋팅을 하다니.
차라리 admin mode의 생성 프로그램을 얹어 버리는 것이 편치 않을까나?
아, 게다가 template같은 형식의 caching을 하는 것 같다. 어차피 꽉 짜여져 있다면 tmp에 있는 caching의 존재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하지만, 거슬리는 것을 어찌 할 수 없는 이야기.
보통 model은 그냥 폼으로 있는 경우가 많지만, controller에 복수형을 붙이고, model에 같은 이름의 단수형의 class를 만들어서 쓰라는 옛날의 내 MadModel과 비슷한 아이디어는 불안감 증폭이다.
어쨌건 이젠 symporny만 써보면 php의 main framework들은 한 번씩 순회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의외로 symporny는 어느정도 마음에 들었었던 느낌이..)

음.
하루? 부족하고,
일주일? 여전히 꽉 안 차고,
한달? 이정도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남을 듯 하고.

대략 새로운 frameworks에 대한 risk는 적어보인다.
뭐, 적어도 새로운 신체시계에 대한 risk보다는 매우 미흡(?)한 정도이다.

한 번 놀아보자. jquery와 cake

다시 시계가 존재하는 곳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가장좋은 방법은 시계를 없애는 것이다.
시간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간의 위치에 대해서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시간을 염려하지 않고 살다보면, 뭔가 새로운 것을 해낼 수 있다.
무한의 시간동안 무한의 공간에서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세상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저 바깥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사는 시간과 공간이 있어서 싱크를 맞추어 서로 살아간다.

이제 나 역시 그들과 같이 싱크를 맞추기 위한 일주일이 필요하다.
밤과 낮을 만들고, 시간을 공간에 흐르게 하여 조그마한 우주를 탄생시켜야지.
그리고 생활과 문화와 스포츠를 계획에 맞추어 5선지에 넣는 것이다. 물론 C장조로.

이렇게 아침이 오는 소리에 일어나고, 체력이 바닥날 즈음 자기 시작하면, 일주일이 지나 내 안에 시계가 동작하기 시작한다. 째깍 째깍.
그러면 더 나은 프로그램을 새로운 시스템에 얹어 보아야 한다.
보다 빠르게, 보다 편리하게.

뭐, 약간의 불안감과 불만감이 있으니까 지금보다 더 발전 할 수 있다.
정상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보자.

이제 다시 시계가 존재하는 곳으로 왔다.

2009년 2월 7일 토요일

끝의 시작.

물론 최악의 상황은 피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물어보고 싶다.
"나는 어떠니? 나는 어디에 어떤 포지션에 있는 거니?"
물어볼 수 없고, 대답도 없는 이런 질문들을...
우리는 보통 유기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아무런 존재를 느끼지 못하겠을 때, 그리고, 어떤 대답을 쉽게 얻고 싶을 때?
물어보고야 만다.
"나는 누군데?"
나 역시 다른 사람처럼 이런 질문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두렵다.
하지만, 취김이 아니라면 언제 물어볼 수나 있나?
사람들의 그런 안일함에 어떻게 감히 질문할 수나 있을까?
내가 사람들을 몰아 붙이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물론 절망적인 대답은 아니다.
사실은 귀찮은 듯이 "그런 걸 왜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냐?" 정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괴상한 창조물은 그걸 듣고 싶어하고 마는 것이다.
내 많은 것을 걸고도.

내 비록, 인간성이 나쁘다고 선전하고 다니지만,
비록, 이상한 놈이라 듣는걸 기꺼워 하지만,
여전히 여린 인간의 심장을 들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부담스러워 어찌할 수 없는 결국 "인간"으로서...
내 이렇게 물어보고, 이렇게 무너져 가도,
난 듣고 싶어한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의무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더이상 아니다. 나 결국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인간의 끝에, 우리들의 마지막에. 어렵사리, 불쌍하게.
언젠가 스스로에게 멍청한 짓을 해 왔다고, 그래서 이렇게 불쌍하게 외톨이로 남았다고 말하게 되겠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구석 구석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겠다. 난 진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석구석을 훑어야만 하겠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단 하나. 나를, 나 자체를 좋아하는, 좋아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어서 함께 살아가는 많은 욕심을 부려도, 있었으면 좋겠다. 썰렁한 것이 그렇게 심각한 죄악이 아니기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뭐 그리 범죄일까?

얼마 전까지, 내가 거만한 걸까? 겸손한 걸까? 고민을 많이 했다.
물론 나는 이상하다.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이상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법이니까, 세상이 이상하길 바라는 것이다.
rational.
누군가 나와 같은 사람이 있기를.
그 분이 여성이어서, 나를 사랑해 주기를.
이상함을 받아들여 주기를.
그래. 약하디 약해서 이런 바램이 가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60억 인구가 있는데, 정신나간 사람 나 말고 하나정도 여성으로 있어도 돼지 않을까?
이렇게 정신나간 생각을 계속 해 보는 것이다.

내게 눈부신 세상에,
너무 벅찬 감동을 주는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조금 용기를 주기를,
humble하게 감히 바래보는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에, 아름다운 그대가 보잘것 없는, 어린, 어리석은 나에게 미소를 보여 주시는 분이 있기를.

여전히 거만한,
아무리 생각해도 겸손함이 없는 제가 소원해 봅니다.
그대와 만나기를, 게으르고 거만한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그렇게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또 꿈꾼다.
어리석은 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거만한 세상을 꿈꾸고 마는 것이다.

자, 곧 세상은 무너질 것이고, 아프락사스의 거대한 날개가 나를 후려칠 것이다.
부디~ 부디.
난 내가 옳기를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내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랑스런 세계보다 파괴되는 세계를 원하는 것 뿐이라고, 그렇게 원해보는 것이다.

2009년 2월 6일 금요일

변화? 변신? 변화.

내가 언제부터 변화를 안 좋아했을까?

본래 systemholic이긴 하지만, 이 '본래'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시스템화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귀찮은 것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도피처로서이다.
싫어하는 것들, 특히 반복적인 것들을 누가 좀 대신 해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었는데, 그것이 자라고 자라서 systemholic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을 낳은 창조주로서는 자라나는 것을 보면 뿌듯해 지기는 하지만, 뭔가 주객전도이다.
항상 새로운 것만을 찾아 헤메이기 때문에 똑같은 짓을 대신해줄 것이 필요했던 것 뿐인데, 어느샌가 나 자신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system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여기까지는 별로 문제가 아닌데, 집을 매우 독창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꼭 들게 만들고 나면, 그 벽 안에 갇혀서 돌아다니기 싫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역마살과는 거리가 먼 건가?

그래, 생각이 난다. 집을 지으려고 하면 구름이 끼고 폭풍이 치고 해 놓은 것 다 날려먹던 적도의 삶이. 물론 그 소설도 다 쓰지 못했지만.
어쨌건, 다시 변해야 할 시간이다.
다시 귀찮아야 할 시간이고,
또 굳건히 지어진 집을 스스로 허물어야 할 시간이다.
(위의 스토리에서 집을 짓는 것도 나이고, 날려먹는 폭풍도 나였던 설정이었던 듯 하다.)

다시 되돌아 가지 말자.
물론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크게든 작게든 반복되면서 굴러가지만, 폭풍의 나선처럼, 밖으로 밖으로 힘차게 내뿜어야 하지 않겠는가?
1.6배만 더 힘을 내자.
황금비율로 나아가는게 가장 안정적인 이유가 있다(물론 수학적으로나 그런지 몰라도).
이러다가 귀찮으면 목표를 1.6배로 잡는 말도 안되는 system이 또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아, 벌써 머릿속을 점령해 가고 있나?
어쨌건 1.6배 정도의 변화를 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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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적도에서 항상 변신을 거듭했다면, 지금은 변화를 하고 싶다.
근거는 "vi가 완벽한 에디터다"의 수학적 증명(or joke)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신이 아니라 변화를 택한 나의 현실주의(?)라고 본다.

Deja vu

(데자뷰 철자를 이리 많이 틀릴줄은 몰랐지만...)

어차피 데자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왜 자신이 끝까지 본 책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까?
eric sink의 software business를 다 본지도 모르고 또 빌려왔다.
그때 같이 빌려서 반정도만 보고 돌려준 '협상의 법칙'이란 책과 혼동한 것 같다.

간디나 정약용을 보면서 느낀것은,
치열하고 끝까지 해 보는 질긴(깊은추구를 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피가(의지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것을 기록하고, 모든것을 정리한다.
실험하고 반복하고 평가하고 또 실험한다.
책 한권을 봐도 그것을 완전하게 자기것으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한 이런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정말 답답하게도 사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특히 나는 '반복은 죄악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지 하다만 것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고,
전에 손댔던 것을 다시 손대기 싫어서 피해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서 Deja vu 아닌 Deja vu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약점만 있는것은 아니다.
반복을 싫어하고, 한 번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 끝없는 집중력을 만들어 낸다. 한 번으로 다른 사람이 여러번 반복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이해와 분석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적게 공부하고 90점을 쉽게 맞을 수 있어도,
많이 공부해서 100점 맞는 사람을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70점 맞으면 합격하는 웬만한 시험은 매우 쉽게 합격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지만, 맞짱을 떠서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생긴다. 다른 사람들이 치사하게도 계속 반복해서 나 보다 위에 서고 마는 것이다. "어이~ 시간 아깝지 않수?" 하고 비꼬는 것은 가능해도 그들을 이기기가 너무 힘들다.

자, 이제는 나의 Deja vu를 없앨 시간이 되었다.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것은 본래 불가능 할 것이고,
나는 나대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야 겠다.
일단 iterables를 만들고, observable한 data를 처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뒤에...
뭐, 대충 이렇게.

Touch

뭔가에 빠져서 지내게 되는 것은, 자극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사람이나, 생물이나, 무기질까지도.
심지어는 더 잘게 나누어 빛이나, 전기 같은 얼핏 순수해 보이는 에너지들 마저도.
모든 것이 자극을 원하고 있다.

항상 안정된 상태가 되면, 그 상태를 벗어나게 해 줄 자극이 필요하고,
그 자극이 오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점점 엔트로피가 자라나게 된다.
카오스적인 엔트로피 상태에서는 이제 뭔가 잔잔하고 안정된 상태를 추구하게 되고,
결국 모든 현상은 사멸하고 만다.

자, 몇일동안 게임에, 만화책으로 도피적인 삶을 산 것을 가지고 drama queen이 될 필요는 없겠다.
그냥 개발로 넘어가자.
단, 오늘 내일은 또 이런저런 만남(술)으로 빠져본 후에.

"늘 취해있어야 한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만이 문제이다.
끔찍한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으려면, 노상 취해있어야 한다.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 보들레르

2009년 1월 28일 수요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한루프를 돌이고 있었다.

도대체가 가능한 일일까?
그것도 query를 observer pattern으로 보낸 것에서?
이제 완전히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프로그램으로 인간을 흉내내는 것을 좋아한다.
모델을 현실세계에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그렇듯이, 조금 이상한 질문을 해 대도, 자신이 아는 데 까지 최선을 다해서 답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query를 managing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입력해", "삭제해", "바꿔"라고 말만 던지면, 부족한 나름대로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해서 적당한 query를 만들어서 DB에 넣고 빼는 녀석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녀석 이름이 Q다. 물론 이녀석을 위해서 DataObserver라는 녀석을 만들어서 받은 Data가 어떤 종류인지 살펴보는 역할을 하게 하고, Query라는 녀석은 Q가 정보가 없을 때 채워주는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그럭저럭 돌아가는 듯 하던 이 녀석들이 갑자기 반기를 들었다.
서버 컴퓨터의 자원을 다 소모하고 결국 다운을 시킨 것인지...
매우 죄책감이 많이 들게 해 버린다.
(게다가 접속이 안 되어 고칠수도 없다)

음.... 얼마안가 계정 짤리겠군.
bash에 익숙해져 버려서 windows환경에서는 개발하기 싫고,
그렇다고 ubuntu에서만 놀자니, 이것저것 대응하는 게 늦고.
(무엇보다 한국에선 internet에서 돌아다닐 수 없다.)

아무래도 cygwin을 잘 깔아봐야 겠다.
그리고 test suite를 먼저 개발해야 겠다. 정말 programing하다보면, 사람이 믿을만 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어떻게 이런 실수까지 할까 생각이 되는 것이다.
정신차리고, 이젠 좀 그만 멍청하자.

2009년 1월 27일 화요일

파시즘은 나쁜 것인가?

전체주의나 국수주의적인 민족적 단결과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 비록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여전히 그것은 그것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든 사상이다.
파시즘이 안 좋은 이유 100가지를 댄다고 해서, 그것이 오직 "나쁘기만 한"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더더욱 방지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은 마치 대마초나 담배가 나쁜 이유만을 들이대며 해서는 당장이라도 사망에 이를듯이 말을 해 대는 것과 같다.
직접 접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 말들이 모두 과장되고 거짓되었다는 것을 알게되면, 오히려 그 사람들의 말을 불신하게 되고, 더욱 마약이나 파시즘에 빠져들게 된다.
편향적이고 무지한 말들은 강력한 제제의 수단이 되지만, 그것이 무너졌을 때에는 완전한 불신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굉장히 안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반대로 그것이 좋게 느껴지고, 그것에 빠질만한 이유를 찾아보자.
비만이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옹호될만한, 그리고 그렇게 되는 과정이 매력적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악의 축"이든지, "백해무익한 담배"든지, 옹졸하고 한쪽만을 두둔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자신이 오히려 그런쪽에 빠지기 쉬운 생각없는 사람임을 인식하고,
사회에 해가 되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사는것이 좋겠다.

적어도 "파시즘"에 대해서 알고싶어 찾은 사람에게,
"광신적이고, 독단적이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폭력과 기만에 중점을 두고 있다."
라는 멍청한 결과론적 헛소리나 지껄여서는 안되겠다.
(폭력과 기만에 "중점"을 둔 사상/사회현상이라니... 당신의 뇌는 어디에 두었는가?)

015B

"항상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많은 over가 있었지만, 015B의 "24시간 정보망은 여유롭다. 워우워우워~ 모뎀만 있으면, 단말기만이 나의 영원한 친구다." 하는 노래의 가사는 점점 더 현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인간은 인간이다. 우리에겐 기다림도 필요한걸~" "우리를 위해만든 모든 것이 우릴 비웃으며, 혹시나 이젠 너무 늦었을까 불안하게 만들고 있네" 등의 가사는 별로 인정되지 않긴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호랑이의 등에 타고 있다.
다만, 잡아먹히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등을 계속 타고 싶어 도리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난 더더욱 우리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투명해 질 때까지 정보망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더더욱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현재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체의 한 부분 부분이 중요하지만, 세포 하나가 죽기를 거부할 때, 그것은 종기가 되어 인간 전체를 죽일 뿐이듯이, 인간이 거대한 시스템의 부분이 되는것을 거부하는 것은 단지 반사회적 인물이 되는 것 뿐일 것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은 차별과, 순응을 강요하는 humanity가 실종된 사회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항상 네트워크에 연결된 사회이며, 우리가 cell이 되어있는 상태이다.
우리의 세포도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유기체이지만, 멍청한 뇌는 "니가 아프지 내가 아프냐?"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별로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가 자라가면서 인간은 적어도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더 높은 곳으로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발가락이 뇌 속에 들어간다고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아직 사회는 느슨하고, 우리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
네트워크가 끊어지면 미칠 것 같은 우리의 모습 속에서, 이제 그 기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껴야 한다. 이제 사회는 더 긴박해 질 것이고, 우리는 "자유"를 외치면서 더 더욱 결정되어진 삶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더 만족을 주는 유기체의 모습으로.
자, 다세포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비판할 때가 아니다. 다세포에서 어떻게 머리부분의 구성세포가 될 것인지를 고민할 때인 것이다.

통일'데이타' 이론은?

물론,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이 별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안다.
일단 뭔가 하나로 통일된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의 효용성 차원에서는 어느정도 먹혀들지는 모르겠지만,
오직 한계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측면에서는 가능성을 매우 제한하기 때문에 좋은 생각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일단 정보를 다루다 보면, 보다 넓게 사용가능한 데이타 타입을 언제나 찾아 헤메이게 되어 있다.
python에서의 dictionary의 개념 같은 것은, associated array의 개념과 사실상 동일하다. 이는 연상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 방법론으로, 개념의 차원을 내리려는 시도가 아닌가?
현재의 배열의 개념도 단순히 집합의 개념이 아니라 연관된 모든것으로 변해간다.
(c에서의 배열은 같은 type이고 그 이유는 메모리를 같은 byte로 등록하기 위해서이다.)

분명히 정보처리의 발전은 효율에서 시각이 다른 효율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분명히 순차적이고 같은 형식의 것들을 모아두는 것이 효율적이라면,
인간적인 연상이 효율의 마지막에 오게 되어있다.
정보라는 것은 인간이 필요한 대로 요구하게 되어 있으므로.

결국 통일적인 데이타를 다루는 방법은, 모든 동떨어진 형식들을 하나의 포인터로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의 참조를 인간이 연상하는 방식으로 모아 놓는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영화의 5분의 법칙처럼, 3차원영상, 동영상, 사진, 소리, 숫자등을 "개인"이 가장 인상깊은 것을 key로 해서 다른 것들을 마치 연상으로 연결된 인간적 기억과 같이 분배하는 것이 순차적 분배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부터 순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상적인 몇 개의 진입점을 중심으로 순서 없이(혹은 약간의 시간의 순서만을 띄엄띄엄 붙여 놓아서) 집어 넣는 것이 더 빠르게 핵심에 다가가게 될것이라는 것이다.
현재로 적용하면, "모든 데이타는 똑같은 '객체'일 뿐이다"와, "모든 것은 과학적이 아니라, '빈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가 정답이 되는 것이다.

이제, '기억되는 사건'의 개념으로 모든 것을 모델링화 해야 한다.
우리의 피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cpu의 thread도.

2009년 1월 23일 금요일

너무 오래된 드라마 작가

오래된 드라마 작가는 "명작가"라는 수식어는 붙지만, 내용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5공 때의 시나리오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봤을 때, 소리내어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다들 어떤 스토리가 나올지는 뻔히 알고 있다.

물론 5공때 나온 법률을 가져다 쓴 소설적 장치는 노련함을 보이지만,
"광주사태 새는 것 막으려고 만든 통신법을 가지고 리사이클 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하는 말이 들린다.

물론 1년을 된통 당하고, 남은 4년을 평온히 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사이버 모욕죄'는 너무 싸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을 좋아하고 지지해 온 것은 아무래도 수준급의 인사들이 모여 있기 때문인데, '사이버 모욕죄'는 3류작가가 붙인 제목처럼 싸구려 냄새가 지독해서 많은 사람이 눈초리가 집중된다. 게다가 '미네르바 촌극'은 이미 지적했듯이 법조계의 수많은 한나라당 지지자들마저 눈쌀을 찌푸리기 충분했다.

물론 외세 자체가 한나라당을 치장해 준다고 해도,
얼굴마담은 크루세이더가 아니라, 한나라당 적인 사람을 써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그 수많은 인재들은 어디에 쓰려고 묵혀두고 있는 것일까? 미국에서 젊은 공화당 지지자가 힘듦을 알 듯이, 한국에서 젊은 한나라당 지지자가 힘든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본연의 모습을 찾지 않는다면, "내가 왜 한나라당을 좋아했지?"라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나 역시 방송법과 사이버 모욕죄(제목은 맘에 안 들지만)를 퍼뜩 힘으로 통과시키고 입을 틀어막은 후에 남은 4년 편히 가기를 바라지만, 3권을 동원해서 안될 것 같으면 조금 바꿔야 하지 않을까? 특히 5공때의 "드라마 작가"는. 쓸 카드 다 내 보이고 밀릴 정도면 정말 바닥이 보이는 수가 있다.

내가 시니컬하기는 해도, 정말로 한나라당을 좋아한다. 한나라당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집결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그것을 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었으면 한다. 능력으로 누를 수 있는 상대를 '억지'로 눌러 보겠다고 한다면...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상대가 발전한 만큼 머리를 썼으면 좋겠다. 9단이 9급을 상대할 때, 접바둑이라고 지는 것이 용납되지는 않는다.

정리하자면, 시청률이 계속 떨어진다면, 오래된 드라마 작가보다는 뛰어난 신작가를 쓰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고정팬들도 신선하지 않은 내용에 질리고 만다는 것이다.

드라마 퀸같은 표현은 양해를 바란다.

교만은 나의 힘.

오랫만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나는 본래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이이었다.
말도 안되게 strict한 방법론으로 개발할 수 있었던 건 교만의 힘이었다.

나보다 훨씬 성실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깔아 뭉개는 힘 부터,
니코틴이 고플 때, 내 재떨이의 장초를 무시할 수 있는 힘 까지.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도 말이 되는 것으로 만드는 힘이었다.

내 모든 인간성을 포기하고, 내 삶을 궁지까지 몰아가도,
되지 않는것을 되게끔 나를 이끌어 가는 그 매력은 나를 한계의 끝까지 이끌어 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겸손하게 되어 보았다.
겸손한 나. 타협하는 나. 2600에도 얼른 달려간 나.
나름 마음에 드는 것을 찿았고, 최선을 다해 겸손을 떨어 보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무도 이해못할 단어들을 내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서도,
"뭘 해도 한 달 지나면, 지금 하고 있는 전문가들 보다는 낫겠죠."
라고 말하지 않고,
"아, 그쪽은 잘하는 편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이 어찌나 굉장히 겸양을 떠는 말이란 말인가?

... 의외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뭐가 잘못 된 것일까?
내 말 뒷편의 거만함을 본 것일까? 아니면 너무 겸양을 떨어서 일까?
내게 중요한 것은 어느쪽일까가 아니라, 그걸 생각하는 자신 이었다.
왜 내가 할일 없이 이런 것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까?
이 자유롭고 거만한 영혼이 취직을 하겠다고 했으면, 모두 열을 올리며 4~5천을 먼저 불러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정도까지 현실감각이 없지는 않지만)
2~3천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개무시했던,
그리고 그만큼도 일을 못한다고 더욱 무시하던,
무한한 생각의 힘을 믿고 있던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겠다.

인간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거만한 자는 거만한 자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겸손한 자는 겸손한 자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상대의 장점을 배우려는 노력은 자신의 능력을 지우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불가능하다 말하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내 능력이다.
힘든 일과 쉬운 일을 구분해서 현명하게 선택해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능력일 것이다.
난 현명하지 않다. 대신 뛰어나다.
겸손하지 않지만, 교만하게 생각한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낸다.
어리석은 자여, 자신을 지켜라.
육식동물이 풀을 먹으며 살 수 없다. 왜 바뀌어야 한다는 거냐?

내 두려움은 현명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여전히 파괴적인 사람이다. 여전히 그들과 다른 삶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스스로 세계를 만들 수 있는데, 왜 너희들의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냐?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 내게는 모든 사람들의 상태를 읽을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은유적으로)
lotto에 맞기 싫어하는데, 매주마다 이상한 할머니가 항상 맞는 숫자 6개를 알려주고 가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그건 단지 이지메다. 매주 그 번호가 맞을 때 마다 수억씩을 손해보는 사람일 뿐이다. 굶어 죽어도 변명의 여지마저 없어진다.
천사에게 도둑질을 시키든 악마에게 사람을 구하게 하든, 적절하지 않기론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내 자신으로 살아가야겠다.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오랫만의 기술면접

정말로 오랫만의 면접이라,
또 안정된 생활을 갖고 싶어하던 중이라,
양복까지 입고, 최대한 잘 보여 보려고 노력을 해 봤다.

'생각해 보자, 오늘은 어떤 인격이 load되어 있지?'
내가 흔히 주장하는 multi-personal system(!=multiplepersonality)을 꺼내, 묻어가는 optimist가 되어 있었는데 그닥 성공적은 아니다.

물론 구직을 오래 한 사람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기술면접을..."
하고 꺼냈을 때는 프로그래밍이나 알고리즘을 메모리(?)에 얹어 놓았는데,
의외로 간단한 설명을 하는 보유능력 확인 차원의 질문들이 많았다.
Smarty?, Template_?..., template 사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mysql?, mssql?, 사용해 본 sql-server 갯수?

음. 프로그래밍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DB 능력은 formal하지 않다.
물론 통계학 + python + 대용량 분산 DB면, 나로서는 군침을 흘려야 할 상황이긴 하지만, 욕심을 내느라 오버해서 둘러대기에는 약간 긴장을 한 상태.
면접자도 많은 면접으로 피곤했는지, 분위기 굳어있는 상태라 혼란보다는 단순함이 나아 보였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큰 프로젝트를 많이/오래 맡아본 DB에 능력있는 사람" 이었고,
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치고 빠지는 client측을 많이 좋아하게 된 사람" 이었다.
물론 그곳에서 연락이 온다면 시너지를 더 생각한 것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line 접근성을 더 중요시 할 것이라 본다.
(그나마 시너지가 있는 카드는 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작은 곳에서 혼자 놀았던 건 아닐까?
큰 프로젝트를 오래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면 더 깊이있는 실력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 돌아와서 블로그를 써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곳에서 깊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깊이가 필요한 곳에 있으면 깊이를 갖게 되는 것이고,
넓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잡학다식하게 되는 것이다.
"수백만의 record를 갖는 분산 DB를 따로 공부해 봐야지" 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필요를 동반하지 않는 변화를 주는것은,
시장이 없는 제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생각과 흡사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해도 곧 내 옆에는 DB책이 한 두개 더 생길 것을 안다.
아니면 "oracle... php... underground."비슷했던 제목의 pdf파일을 읽고 있겠지.

어쨌건 난 여전히 client의 시대를 살고 있고 RxA가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쪽이 더 재미있기도 하다고 생각했지만, 양쪽다 만만찮게 관심이 간다)

일단 이번주는 Adobe와 놀아준다.

2009년 1월 10일 토요일

미네르바를 체포한 불쌍한 우리들.

미네르바를 체포한 불쌍한 이명박 정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강한 부정은 긍정이지? 아마?" 하는 결론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언론탄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을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 것은,
그가 쓴 글들이 옆구리를 강하게 찔렀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넘겼어야 하는 것을 한 번 '발끈' 하면서 자승자박을 하고 말았다.
그 동안 이명박 정부보다 미네르바를 믿었던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나마 "올해는 뭔가 해줄거야." 라고 조금이라도 믿었던 사람(나를 포함)들은,
정부의 촌극을 보면서 "이런, 정말로 그렇게 까지 힘든 거였군." 하고 생각할 수 밖에는 없는 듯 하다.

특히 앞으로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는 시간이 오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욱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할 때,
도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한 걸까?
"미네르바 체포로 경제위기 극복!" 이란 꿈을 꿨으면, 돼지꿈으로 생각하고 로또나 살 것이지.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정치가 무엇인지 잊고 있다고 생각된다.

찌를 수 있다는 이유로 찔러 보았다가 지지가 바닥으로 떨어질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정부를 더욱 지지하지 못해 더 힘들게 위기를 극복해 가야할 사람들에게는...)

2009년 1월 9일 금요일

노비스(NOVICE)만 노리는 바이러스?

알 수 없는 것은, 어떻게 바이러스는 초보자의 컴퓨터만을 노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난 보통 백신 프로그램을 켜 놓지 않고 살고,
당연히 방화벽 같은 것은 windows를 깔고나서 재빠르게 꺼 놓는다.

그리고 나서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삐리리~"한 사이트나,
firefox에서 "공격이 보고된 사이트 입니다. 왠만하면 열지 않는게 좋겠죠?"
라고 표시된 곳으로 들어가 보곤 한다.
(이 경우는 그 사이트에서 작업을 해야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다른 사람에게 자료를 넘겨주거나 하는 경우때문에 백신으로 지루한 검색을 켜 놓으면, 항상 시간낭비가 되고 만다.
왜 그 흔한 트로이목마 하나 기생하고 있지 않는걸까?

그보다 적절한 질문은,
항상 바이러스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한 것일까?
그들은 한결같이,
"이상한 사이트에는 절대로 근처에도 가 보지 않았는데..."
"항상 백신 켜 놓고, 방화벽은 뭔지도, 어떻게 끄는지도 모르는데?"
라는 대답을 해 준다.

그래서 나의 가설은,
'바이러스가 "ZEN"을 통해서 사람을 구분하는 능력을 깨우쳤다.'
'그들은 Network의 "리오"(Matrix)다. 이미 밖으로 나와서 걸어다니는 그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등이었으나,
보다 간단한 가설은, 'P2P' 였다.
물론 훌륭한 백신 프로그램은 내부적으로 돌리고 있는 그들을 근거없이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TOT*브라우저"나 "당나*" 등으로 다운로드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도 같다.

뭐, 그렇다고 해도 바이러스의 공격컴퓨터를 알아보는 재능에는 갈채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 그들이 Matrix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들의 창조자를 만나게 되기를 응원해 본

2009년 1월 7일 수요일

국제전화 비용

큰누나가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 가 있는 관계로...
08216 이라는 카드번호로 전화를 해 봤다.

물론 아주 여유있게~
"사십 몇분 남았다고 하네. 카드금액 떨어져가고 있나보지?"
하면서.
하지만, 나중에 카드 전화가 과연 인터넷폰보다 싸기야 할까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생각보다 국제전화가 비싸다는 것을 알았고(특히 몇몇 국가는),
카드 전화 최저가가 130원 가량이라는 것도 알았다.

scype라는 곳에서 인터넷폰으로 정액요금을 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정액요금은 전화비가 20~30원 정도인 서른 몇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이었다.
(당연히 파키스탄은 들어가지 않는다)

08216은 과연 얼마나 갈까 궁금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비싸면 1분에 500원에서 1000원 까지도 가는데 막 쓴게 아깝기도 하다.

일단 큰누나는 거의 1월 내내 나가있다고 하니까 최저가인 카드 하나 사서 가족끼리 함께 쓰는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3만원짜리 하나 사 놓으면 거의 4시간은 통화를 할 수 있으니.

참고삼아 Skype의 파키스탄 요금은 1분에 170원 가량이었다.
국제전화를 쓸 일이 없을 수 있으니까 Skype 정량요금을 하나 끊고 주욱 사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할것같다.
국내전화는 1분에 20원 조금 넘는 정도였던가?
핸드폰 통화요금이 6배는 비싼 것 같으니까 (보통 10초에 18~20원 가량이었던 듯)
정량을 끊어놓고 가끔씩 집에서 할 일 없고,
사회성이 극히 하락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사용해 주면 되겠다.

역시 모든 소소한 일들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Google 염탐하던 중 blog서비스 구경.

어딘가에서 사들였는지 모르지만, google로 이름을 바꾸지 않은 blog를 google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도 꽤 잘 나가는 blog service를 사 들였나 보다.

어쨌건 생각보다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 장점이 있겠지.
천천히 알아가고, 이것을 어떻게 잘 사용할지를 먼저 생각해 보자.

일단 이름을 StormCast라고 지었으니까 내가 Madstorm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는 프로그래밍 작업들의 로그를 남기면 될 것 같다.
이를테면....
"현재 새로운 작업 진행중. 프로젝트명 XXXX"
하는 식으로 내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혹은 어떤 쪽으로 작업을 가져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고찰(까지나...)등을 부드럽게 가져가는 블로그면 좋겠다.

지금까지 너무 게으른 나였기에 블로그를 여기저기 만들어 놓고는 주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조금 부지런해지려는 나니까, 이제 서비스만 그럴듯 하면 될 것이다.

일단, 단순 깔끔한 것은 마음에 든다.
(근데 벌써 ajax통신에 에러가...)

와이드 화면에서 글 쓰는 장소가 답답하게 조그만 것은 마음에 걸리지만,
사실 사용자 디자인은 나와 거리가 먼 편이니까, 나에게는 별로 상관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