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3일 금요일

교만은 나의 힘.

오랫만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나는 본래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이이었다.
말도 안되게 strict한 방법론으로 개발할 수 있었던 건 교만의 힘이었다.

나보다 훨씬 성실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깔아 뭉개는 힘 부터,
니코틴이 고플 때, 내 재떨이의 장초를 무시할 수 있는 힘 까지.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도 말이 되는 것으로 만드는 힘이었다.

내 모든 인간성을 포기하고, 내 삶을 궁지까지 몰아가도,
되지 않는것을 되게끔 나를 이끌어 가는 그 매력은 나를 한계의 끝까지 이끌어 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겸손하게 되어 보았다.
겸손한 나. 타협하는 나. 2600에도 얼른 달려간 나.
나름 마음에 드는 것을 찿았고, 최선을 다해 겸손을 떨어 보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무도 이해못할 단어들을 내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서도,
"뭘 해도 한 달 지나면, 지금 하고 있는 전문가들 보다는 낫겠죠."
라고 말하지 않고,
"아, 그쪽은 잘하는 편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이 어찌나 굉장히 겸양을 떠는 말이란 말인가?

... 의외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뭐가 잘못 된 것일까?
내 말 뒷편의 거만함을 본 것일까? 아니면 너무 겸양을 떨어서 일까?
내게 중요한 것은 어느쪽일까가 아니라, 그걸 생각하는 자신 이었다.
왜 내가 할일 없이 이런 것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까?
이 자유롭고 거만한 영혼이 취직을 하겠다고 했으면, 모두 열을 올리며 4~5천을 먼저 불러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정도까지 현실감각이 없지는 않지만)
2~3천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개무시했던,
그리고 그만큼도 일을 못한다고 더욱 무시하던,
무한한 생각의 힘을 믿고 있던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겠다.

인간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거만한 자는 거만한 자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겸손한 자는 겸손한 자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상대의 장점을 배우려는 노력은 자신의 능력을 지우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불가능하다 말하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내 능력이다.
힘든 일과 쉬운 일을 구분해서 현명하게 선택해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능력일 것이다.
난 현명하지 않다. 대신 뛰어나다.
겸손하지 않지만, 교만하게 생각한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낸다.
어리석은 자여, 자신을 지켜라.
육식동물이 풀을 먹으며 살 수 없다. 왜 바뀌어야 한다는 거냐?

내 두려움은 현명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여전히 파괴적인 사람이다. 여전히 그들과 다른 삶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스스로 세계를 만들 수 있는데, 왜 너희들의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냐?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 내게는 모든 사람들의 상태를 읽을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은유적으로)
lotto에 맞기 싫어하는데, 매주마다 이상한 할머니가 항상 맞는 숫자 6개를 알려주고 가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그건 단지 이지메다. 매주 그 번호가 맞을 때 마다 수억씩을 손해보는 사람일 뿐이다. 굶어 죽어도 변명의 여지마저 없어진다.
천사에게 도둑질을 시키든 악마에게 사람을 구하게 하든, 적절하지 않기론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내 자신으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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