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2일 일요일

자유와 사회

자유.
내·외부로부터의 구속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의 상태와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있는 것. -- 위키백과

많은 사람에게 자유는 실패나 도태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나에게는 달콤하고, 꿈과 같으며, 그 자체로 성공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회에 속해있다 보면, 자신이 자유로운지 그렇지 않은지를 오해하고 착각한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자신이 자유로운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한 3~4일 정도 휴가를 얻어서,
핸드폰과 컴퓨터, 심지어 사랑하는 책과 시계 마저도 모두 없애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성이는 것이다.
자신의 가슴과 머리 속에서 피어오르는 첫 번째 것이 가장 자신을 구속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들을 확인하고, 자신이 자유롭지 않음을 느낀다.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처리해야 할 회사 일들과, 자신이 일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나,
그로 인해 가족과 친구와 친척들과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자신을 순식간에 뒤덮어 버릴 것이다.
그것들은 영원히 당신 곁에서 떠나지 않을 걱정거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자유롭다면,
생각은 고요하고, 마침내 움직였을 때는 뭔가 스스로를 심심하지 않게 하는 많은 공상이 되거나,
생각이 자신을 스스로 정리하고, 저 멀리 있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명할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를 이렇게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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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라고 착각들을 한다.
하지만, 이 말은 고작 인간의 한 측면(성질)을 고찰했을 뿐이다.

인간은 사회를 이룬다.
하지만 "사회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자유를 제약 당하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사회가 자신의 자유를 제약한다면, 그 사회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롭지 않은 개인은 그 사회를 적대시 할 뿐이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반 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나, 사회 부적응자들의 문제가 자유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는 사회의 강압에 있고, 해답은 자유에 있다.

자신이 속한 사회들을 하나씩 느껴 보라.
한국, 회사, 친족과 가족, 친구들.
자신이 느끼는 압박이 어디에서 왔는지 명백해 지지 않는가?

그렇지만, 자유는 사회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엄청난 두려움을 몰고 온다.
사회라는 것은 마약과도 같아서, 지신에게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없어진다는 상상 만으로도 더 할 나위 없는 공포심을 인간에게 준다.

하지만, 안심해도 좋다.
자유는 사회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자유로운 사람은 사회에 연연하지 않고, 수 많은 사회를 마치 투명인간 처럼, 혹은 다른 차원에 있는 것 처럼 오고 갈 수 있다.
...
물론, 사회쪽 구성원은 그를 잃었다고,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겠다.
혹은 사회에 타격이 있는 경우도 많고.
...
아무튼, 화제를 급전환 해서,
자유와 사회는 완전히 배타적이지 않으므로,
자유를 덜 침해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노력으로,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반 사회적인 사람들과 부적응자를 줄이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였으니,
먼저 가족부터 살피자. 누가 소외 되었으며, 누가 자유를 잃고 신음하고 있는가?
그 다음은 친구와 친척들을 살피자. 한국을 살펴 보고, 세계를 살펴보자.
모든 사회에 자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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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내 자유를 사회가 침해하고 있으며, 그 증거들을 열거하고, 시덥잖은 논리를 펼까 생각했는데,
조금 오버인 것 같아서 자유와 사회의 화해를 청해 보았다.

소위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사회의 압박으로 '자유'를 알거나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기에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 자유란 달콤하고, 꿈과 같다.

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매니저와 백업 프로그래머

매니저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매니저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혹은 lead를 통해서 일을 해 나가야 한다.
작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프로그래머에게 어떤 프로젝트의 관리를 하라고 하면,
프로그래머는 그 프로젝트를 분석하고 해부하고, 프로그램과 아키텍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고 노력한다.
프로그래머는 자신을 전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질문이 왔을 때,
그것에 대한 답변을 잘 하지 못하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는다.
따라서 자신이 관계된 혹은 매니저가 된 프로젝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때 까지 멈추지 못한다.
자신이 "상관"이 되었으면,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의 지식이 없으면 어떻게 그들에게 당당히 지시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니저가 된 프로그래머의 생각 방식인 것 같다.

그 결과로 이 매니저는 프로젝트의 몇 사람이 갑자기 빠져도, 프로젝트를 유지 시킬 수 있는 "백업 프로그래머"가 되고, 프로젝트 인계자가 된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프로젝트를 맡긴 사람이 원한 것이 이것일 수도 있다.
정신나간 관리자가 프로그래머에게 "니가 저 프로젝트 관리해야 돼. 그러니까 백업 프로그래머가 되도록 해" 라고 시킨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무능한 사람이 시니어 관리자인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그래머에서 관리자를 맡게 된 사람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앞으로는 "관리"업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관리 업무는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생산 업무가 원활하게 이루어 지도록 관리하는 것이 업무이다.

컴퓨터와 사람으로 구성 된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에서 관리자가 할 일은,
컴퓨터와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다.

대부분 컴퓨터는 잘 고장나거나 하지 않으므로, 90%는 사람을 관리하는 것일테다.
나머지는 코드 백업이 잘 되고 있는지, 서버가 불안정 하지는 않은지 같은 잡무와, 현황을 파악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털어 주는 정도일까?
아니면, 스케쥴 관리를 하면서 프로그래머 들이 안정적으로 개발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

매니저 역할이 자신과 맞지 않는 많은 관리자가 된 프로그래머 들은,
"내가 이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모르는데, 어떻게 스케쥴을 관리하고, 어떻게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겠어?"
라고 되묻곤 한다. 물론, 자신이 그 대답을 알면서도 말이다.

매니저는 프로그래머를 통해서 스케쥴과 현황을 알게되는 것이다.
당연히 프로그래머들은 그것을 매우 귀찮아 하고, 자신을 방해 한다고 생각하며, 당신을 싫어할 것이다.
마치 당신이 프로그래머 일 때 그랬듯이,
"왜 알지도 못하는 놈이 와서 남의 프로젝트에 끼어들어서 방해질을 하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당연히 매니저가 된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더 많이 안다고 외치기 위해 프로젝트를 프로그래머 보다 더 자세히, 촘촘히, 완벽하게 알고 싶어진다. 바로, 백업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매니저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프로그래머 였던지 간에, 당신이 이미 매니저라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프로그래머의 생각을 들으며 관계를 다지고,
그들 필요하다는 일을 하거나 조율 해 나가며 신뢰를 쌓아서,
사람을 통해 전체 적인 방향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쓰면서도, 한 부분의 전문가인 프로그래머에게
사람을 관리하는 전문분야 외의 일을 "강제로" 시키는 것이 가장 큰 오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했든, 그것이 짐 지워진 일이 되었든,
매니저가 되라고 했을 때, 백업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은 크나 큰 패착이다.

매니저가 프로그래머를 이해하기 위해서 코드를 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프로그래머와 경쟁하거나, 자신이 백업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 코드를 보지는 말아야 한다.

매니저가 되는 순간,
자신의 주 업무가 프로그래밍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매니저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다.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맛있게 먹자.

맛이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는 단연 실론티다.
뭔가 음료수를 사먹고 싶을 때, 난 실론티가 있느냐 없느냐에 기분이 좌지우지 되곤 한다.
다행히 편의점에는 대부분 950원 정도의 비싼 가격으로 팔고 있지만 말이다.

이 실론티도 최고의 맛을 내는 시간과 장소가 있는데,
단연, 열심히 걸어걸어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2주일 간 읽을 책을 고르고 나와서,
자판기에 있는 시원한 실론티를 사서 마시는 것이 최고다.

평소에도 충분히 맛있지만,
이 때는 실론티의 풍부한 맛과 달콤함의 세부 사항들을 입 안에서 완전하게 느끼며 마실 수가 있다.
마치 "수고했어."하는 듯한 치하의 맛이랄까...

그런 나이지만, 온 몸에 땀을 흠뻑 흘릴 정도의 운동을 하고 난 뒤는 틀리다.
이온음료?
아니, 극도로 몸을 굴리고 나서 가장 당기는 음료는 단연 콜라다.
한 두 시간 적당히 운동을 했을 때는 포카리 스웨트가 끌리지만,
서너시간 이상의 극렬한 운동 뒤에는 매우 달고, 목을 비틀어주는 탄산이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는 음료수 이다.
과학적인 견해로는 과도한 에너지 소비로 인해 몸이 단당류(빠르게 에너지 전환이 되는)를 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왜 콜라여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담배가 가장 맛있을 때는?
2일 ~ 1주일 정도의 금연 후에 오전 11시나 오후 3시 ~ 4시 경에 실내에 앉아서 태우는 첫 담배.
보통 향이 있는 담배는 싫어하지만, 이 때만은 약간의 향이 있는 KENT double super light나, Davidoff rich blue 정도의 담배가 어울린다.

모든 담배에는 독특한 향이 있지만,
내가 "무향 계열"이라고 부르는 담배들이 있다.
88이나 This, simple, Mild seven, marlboro 등등이 그런데,
이 중에서도, 88이나 This는 좋아하고, Mild seven은 싫어하며, simple, marlboro는 그저 그렇다.
88은 고소한 맛이,
This는 깔끔한 맛,
Mild seven은 수 개 이상 피우면 느끼한 맛이 싫고,
simple은 별 의미없는 (정말 단순한) 맛,
marlboro light는 Mild seven과 비슷한 느끼한 맛이지만, 비교적 덜 느끼한 정도 이다.

다른 향을 섞은 담배에는,
이미 말한 둘을 빼고, 솔, 도라지, 던힐, 필립 모리스, 수 많은 멘톨들이 있겠지만,
왠만해서는 섞은 냄새가 기분 좋지가 않다.
그나마 향이 덜한 던힐은 없으면 피우는 정도가 된다.

아, 왠지 담배 맛이 다 똑같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담배 맛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쌈밥은 점심식사 시간에 1시간을 꼬박 들여 천천히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있고,
등심은 역시! 저녁에 비싼 고기를 정육점에서 사 와서 후라이팬에 센 불로 한쪽만 살짝 익히고 뒤집은 후 바로 먹는 것이 최고였던 것 같다.
계란은 쌓아 올려서 위쪽이 덜 익은 듯한 스크럼블 에그를 저녁 9시 경에,
회는 동해 포구에서 두껍게 썰은 광어/우럭을 밤에 소주와 함께 하는 것이 최고다. 물론, 초장은 멀리 치우고 간장과 와사비를 살짝만 찍어 먹는다.

이런...
미각에 집중을 하면, 인간성을 잃어 버리는 듯 하다.
함께 먹어서 맛있는 것은?
음... 아무래도 맛에 집중하지 않고, 분위기로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은,
왠지 삼겹살이다.
삼겹살은 야외의 부산한 가족이나 친구들의 움직임 속에서 최고의 맛을 내고 있다.

슬픔에 어울리는 편육은 아마도 장례식에 주로 있어서 인 듯 하고,
아! 샤브샤브는 조금 분주해도 함께 먹을 때 맛있는 음식이다.

어렸을 때, 친구네 집에서 "간식"이란 것을 처음 접해보고(군것질이 아닌),
점차 자주 먹게되는 삶을 살다가,
이제는 다시 간식이 군것질이 되고, 적은 횟수로 먹는 시대가 되는 것 같다.
사실 끼니 찾아 먹는것이 귀찮아 지기도 하고,
어떻게 먹는 것이 나을까를 다시금 생각하다 보니,
내가 맛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돌아 본 것 같다.

결론은, 생각보다 기억하는 맛있는 맛들이 많다는 점.

건강과 visual도 좋지만,
먹는 것이 예전의 행복과 의미를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
잘 모르겠으면, 우선 맛있게 먹고 보자.
인간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맛을 구분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백수란...

백수란 백수건달의 줄임말로,
건달은 간다르바라는 음악과 술을 좋아하는 신의 이름이니,
결국, 가수나 연예인을 백수라고 하는 편이...
별로 좋지는 않겠다.

그래서 결국, 개인적인 분류법으로서의 백수를 말해 보자.

사람은 무언가 한 가지를 잘 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조금 negative하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일을 잘 못하게 설계했는데,
잘 깍이지도 못해서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고 하면,...
우울증의 징조라고 할려나?

그렇지만, 사람을 설명하는 데에는 negative한 쪽이 더 잘 먹힌다.
어쨌건,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옳아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백수란 잘 깍인 옥구슬 같이,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어떤 백수는 뭘 해도 잘 하는게 없겠고,
어떤 백수는 뭘 해도 잘 하는데, 특별히 잘 하는게 없다.
별국 백수의 특징은 한 구석에 파고들지 못하고 여러 일들을 나름대로 하다가 실업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장래 희망 : 실업자.

뭐, 이렇게 쓰는 어린 백수의 싹들이 간혹 있을지도...
어쨌건 내 생각에는 백수는 타고나는 것이다.

보통 백수는 특징적으로 몽상가적인 기질이 있고,
한창의 나이 때에는 자신의 여러 기질들을 모아서 하나의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내려 한다.
이것이 성공만 한다면, 백수는 순식간에 폭풍이 되어서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사라져 가겠지만,
일반적으로 놀라운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다른 곳에 관심을 갖고 전환한다.
물론, 새로운 관심사까지 엮어서 더 거대한 작품이... 꿈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언젠간 백수(실업자)가 되어서 내가 꿈꾸는 것들을 만들면서 살겠다고 하는,
나와 같은 백수(간다르바의 후손)를 주변에서 본다면,
"정신 차리게, 친구."
보다는,
"오늘은 무슨 꿈을 꾸는가? 친구."
라고 말해 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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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르바는 의술의 신이기도 했던 것 같다.
영생의 샘인 소마를 지키는 걸로 봐서, 죽지도 않고 오래 살지 않을까?
본래 생각없는 몽상가가 오래 사는 법.

한국의 교육은 MAXIMUM.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결혼 생활에 대해 말 하지 말고,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으면, 교육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한다.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사랑, 결혼, 연애, 출산, 교육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동의하고들 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등도 역시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냥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만나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자신들이 투자할 수 있는 maximum을 투자한다.
상류층은 그야말로 사교육과 공교육이 존재하는 대로의 maximum을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고,
중산층은 "상류층에는 못하지만 그에 가까운",
하류층은 "중산층에는 못미치지만, 버는 돈의 최대한" 을 투자(?)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연봉 5~6천에 월 120 ~ 160의 유치원이나,
연봉 4~5천에 월 80에 피아노나 각종 학원들.
월에 들어오는 돈이 120인 사람이 5~60 만원을 자녀 학교와 학원비로 쓰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당신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 만큼은 못해주지 않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그래도 해 줄 수 있는 만큼 해 주고 싶다"고 말을 한다.
아이들에게,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최대한의 것을 해 준다는 자부심.

그렇지만, 그 밑의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 위의 사람들은 어떠한가?
만일 교육하는 만큼 아이들이 한계를 지닌다면, 지금 대다수의 부모들이 하고 있는 maximum을 모아 보면, 바로 계층을 굳건히 하는 그래프가 나타나는 것이다.
부모들이 벌어들이는 만큼 대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계급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교육비를 맥시멈으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 사회를 계급화 하는데 일조하는 것인데,
어째서 그것이 자녀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부모들이 변하지 않고, "사회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자녀들이 변화된, 계급이 없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사실 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많게 잡아 13~17% 정도라고 한다.
유전이 미치는 영향을 50% 정도로 잡고 있으니(쌍둥이 분석 결과?),
교육에 수천만원 적게 돈을 들였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별로 없다.

물론, 한국의 통계와 교육은 유전학적 영향을 매우 싫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위의 50%나 13~17%를 증오할 수 있겠다.
(게다가 한국은 그 십 수 %를 모아서 성공한 나라이다. 아마.)
하지만, 하려는 말은, 그게 자신의 자녀이든 아니든, 각 개인은 개인의 개성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교육을 원하는 이는 스스로 가르칠 수 있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머지는 어디 갔냐고?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개인적 생각으로는, 아이들의 삶 속에, 그리고 부모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 속에 있지 않을까?


많은 부모들이 교육비 대신에 자신과 자녀의 생각을 바꾸도록 힘써야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부모들이란 한 부모들이 모인 집합이다.

독감

물론 요즘에는 많이들 구분하지만,
예전에는 독감은 감기가 독하게 걸린 것으로 알곤 했다.

플루라는 애칭(?)까지 생긴 인플루앤자는,
바이러스 성인 감기와는 틀리게...
아마도 크기가 10배 정도 더 크고, 아마도 더 지능적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력은 그다지 믿을만 하지 못하다.)

사실 중요한 것은 플루는 전염성이 굉장한 데다가,
열과 기침 콧물 오한등이 종합 선물세트로 기가 막히게 온 몸을  가득 채워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오 헤저드의 ground zero 가 나라는 것이 회사 동료들에게 매우 미안하다.

내일 출근하면 과연 몇 명의 프로그래머 들이 좀비화 되어서 다시 플루를 옮기고 있을까?
한번 걸리고 나면 내성이 생기는 것이 플루에도 적용이 되는 것일까?

등등이 궁금하긴 하지만, 뭐, 헛소리 같고...

월차를 쓰고,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다 잠을 자다를 반복하다 보니,
몇 가지 머릿속을 맴돌던 내용들을 어딘가에 정리를 해야 겠거니 싶은데,

왠지 facebook에 올리면 길고 심각하다 할 테고,
내 journal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은 이야기 들이라,
오랫만에 blogger가 생각이 났다.

거의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맘 편한대로, 편협한 이야기를 써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