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마흔살 즈음 부터라... 그럴리는 없지만.
어쨌건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똑같이 살고 계셨다... 역시 아닌것 같지만.
문재인씨 처럼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러길 바라셨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고.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항상 그렇듯이 돈에 쪼달리셨고, 사람과 만남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지나친 노동을 감내하셔야 했다. 어쩌면 문재인씨와 5년간의 대한민국 역시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헛소리고.
아버지는 내가 재수를 할 때 대학을 포기하고 기술 하나를 익히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물론, 난 재수를 한게 아니라 그냥 놀고 있었고,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으니 포기할 필요도 없었지만. 어쨌건 오직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대학을 다시 들어가고 아무것도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평생동안 아버지에게 해 드린 일이라고는 8만원 짜리 운동화 하나를 선물해 드린 것이 전부였다.
솔직히 나는 너무 늦자라서 20살 일 때 정신 연령이 10살 남짓 했다. 마흔이 되니 겨우 20살 정도의 정신 수준을 갖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아버지가 살아 계셨어도 겨우 철이 들고 얼마 안 지난 나를 보고 계셔야 한다. 그렇지만, 나와 아버지는 잘 맞는 사이였을 것 같다. 생각도 행동도 비슷해서. 지금처럼 벌고 있다면 1주일에 몇 번은 같이 술을 마실 수 있지 않았을까? 아, 물론 최근 들어서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어쨌건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그리고 지금의 내가 동일하다면, 아버지와 잦은 술자리로 둘다 간을 망쳐볼 수도 있었을텐데... 한다.
함께 간을 망쳐보지는 못했지만, 난 아버지가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해보질 못했었다. 어린 나에게는 아버지에게 여우같은 어머니와 식인토끼 비슷하게 생긴 4 자녀들이 무겁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때 어렸기에, 아버지의 힘든 표정만을 봤던 것 같다. 마치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공과금 걱정을 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돈을 벌고 싶었으나 벌지 못한 사람'으로 매도한 호로벗 기요새끼... 아니, 로버트 기요사키 처럼.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돈 때문에 더 많은 노동을 하는 것을 보며 돈이 부족해서 삶이 힘들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지금 아버지가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 역시 기술 하나를 가지고 힘들게 피곤하게 일을 하면서 살고, 힘들어 질 때마다 앓는 소리를 하지만, 실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 수록 눈치보는 일에서 멀어지고, 정말로 원하는 것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돈이 부족하지만, 돈이 중요하다고 말해야 하지만, 사실 사람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주변과 공감해고 위로하는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즐거움이, 행복함이 아버지에게 가득했을 거라고 느끼는 것이다.
난 이제 더이상 사회적 공감이 행복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아버지가 옳았다. 좋은 집과 차와 남이 부러워 하는 무언가 보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웃는 것이 더 행복하다.
우리집의 vision은 "웃으며 살자." 였어야 했다.
물론 아버지와 닮은 아들이 말하는 거라 객관성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조상이 이조판서였다는 것이 중요할까? 그 분이 즐겁고 행복하셨던게 중요할까?
아버지 역시 내게 말한다. 내가 아무리 돈을 벌어 왕릉같은 무덤을 지어 드린다고 해도 전혀 쓸모없는 일이라고.
행복하라고. 가까운 사람과 웃으면서 살라고. 돈 따위는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버지.
오늘은 달이 붉게 뜨고,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특별한 날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천문의 현상이 없어도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 오늘을 더 특별한 날로 만듭니다.
아버지를 힘들게 일하신 분으로 기억한 것이 얼마나 죄송한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를 더 알게 되겠지요.
오늘은 아버지의 웃음을 추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