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놔둬도 일이 저절로 돌아가면, 알아서 일하게 두고 집에서 실컷 놀면 될 것 아닌가?"라고 말하지 않을까?
인간의 쓸모라는 것이 과연 적당한 노동을 하는 것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이 하게 내버려 두고 인간은 꿈꾸고 공상에 빠져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산업사회는 아무리 많은 생산을 해도 가난한 자를 굶어죽게 내버려 둔 전력이 있기에, 인공지능이 많은 인력을 대체한 사회에서도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냉혹하게 버려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한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생산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듯이, 실업자들이 냉대받는 문제 역시 사회적 합의나 생각의 전환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회적 합의의 몇 가지 실험은 유럽의 기본임금같은 방법이 있겠지만, 몇몇의 선진국에나 가능한 일일 테고, 생각의 전환은 역시 인간과 인공지능의 융합이 되지 않을까?
미래가 천천히 온 다면, 인간이 "로봇과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르지." 같은 차별적인 생각을 줄일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할 수 있도록 온다면 융합을 통한 상생의 방향을 천천히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는 인공지능의 속도는 인간의 적응력을 기다려 주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 만이 방법으로 남을 것이다.
"백수는 여유있게 멍때리는 것으로 여유를 찾게 해 주지."
"머리가 복잡할 때는 역시 백수를 만나서 휴식을 취하는 거야."
백수에게서 이런 쓸모를 찾는다거나, 아니면 굳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며 우주로,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거부하고, 백수끼리, 혹은 백수에게 적합한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함께 따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적당한 공간을 요구해서 '백수족마을'이나 '백수국'을 설립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뛰어나 지면, '만물의 영장'자리를 너나 가져 하면서 건네주고, 평화롭게 공존하면 되지 않겠는가?
...
물론,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면, 인간을 닮아 자기 종족이 아닌 인간을 포함한 모두를 싸그리 다 죽여 버릴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래도 설마 인간만큼 그러기야 하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그 전에 인간 스스로 지금까지와 같은 잔인함을 조금 반성하고, 공존을 도모하는 마음을 키운 후 인공지능을 좋은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측면에서 백수는 인공지능이 발전해 가는 현 시점에서 가장 훌륭한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백수는 전쟁을 하지도 않고, 남의 돈을 빼앗지도 않으며, 싸움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압박하지도 않고 있으니까.
음... 실업자와 백수의 의미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나 싶긴 하다.
다음 세대에는 실업자가 아닌 백수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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