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서는 개구간인가 폐구간인가가 중요하게 생각된다.
개구간이란 어떤 숫자 자체가 그 구간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폐구간은 반대이다.
보다 쉽게 느끼기 위해서는, 개구간은 -2< x < 3 인 거고, 폐구간은 -2<= x <=3인 것이다.
여기에서 -2와 3이 이 구간 안에 포함되는가 되지 않는가의 숫자 하나의 문제일 뿐이지만, 수학적으로는 이 사실로 부터 많은 명확성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그에 따라서 명증할 수 있는 여러가지를 매우 많은 말들로 어렵게 써 놓고 있다.
-2와 3의 사이에는 수억조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무한한 숫자들이 있는데, 왜 이 숫자의 포함 여부가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수학적으로는 구간이 무한히 접근하는가의 문제와 어떤 부분으로 덮을 수 있는가의 문제 등이 있지만 천억에 천억을 천억번 곱한 것 보다 많은 -2와 3 사이의 수들이 무시당하는 수모를 당하는 동안 수학적이지 않은 어떤 의미를 이들이 과연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chaos이론이나 complexity이론에서 나오는 혼돈의 가장자리 라는 개념을 들으면서 이 부분이 굉장히 궁금해 지게 되었다. 물론 두 이론 모두 수학적인 모델링이 강하게 들어간 이론이긴 하지만, 왠지 다른 이론에서 그 끝의 명확성이, 혹은 그 부분들이 항상 주목을 받는 이유가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왜냐면 이런 것들은 삶의 시작과 끝만이 의미를 지니고, 마치 과정이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극단의 것을 시도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고, 그런 것들을 발전시켜 나간 헌신들이 의미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중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눈이 소복하게 내린 곳에 발자욱을 내며 즐거워 하던 순수한 시절부터,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 자신을 황야로 내모는 우리들의 무모한 도전까지.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는 근로자의 날 같은 때에만 우리네를 지탱해 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존경을 보내곤 한다. 창의 끝은 창의 몸체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모든 것이 있다고. 물론 이런 말에 속아넘어가 주는 사람들이 50%정도는 있기에 세상이 온건히 카스트 제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364일 동안 99%정도의 사람들이 존경을 보내는 사람들은 극단에서 상대를 찔러 쓰러트리는 창의 끝과 같은자들 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를 끝없이 새로운 곳으로 내모는 잔인한 끝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발 옆에 파멸이 있는 혼돈의 가장자리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안정을 원하는가? 나 역시 안정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옳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제 다시 물어봐야 할 시간이 왔다. 화장실로 급히 뛰어가서 거울을 보라. 여전히 눈이 살아있는가? 정말로 살아있는가?
이제 다시 저 극단으로, 저 가장자리로 가야 할 시간이다.
-2와 3 근방에서 compact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별하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시간이다.
결론은 이상하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전제이다. -2와 3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1.414... 같은 위치에서 헤메이며 안정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구간인지가 중요할 때가 있을때도 있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는 그 극단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의미를 위해서건, 우리가 초라하게 받을 성적표에 대해서건, 그 극단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힘을 내어 저 폭풍치는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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